우리 이웃에는 '나눔'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의하면 IMF 경제위기 후 빈곤층이 두 배로 급증, 도시가구 10가구 가운데 1가구가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으로 월 수입 1백5만5천원)에 미달하는 '절대 빈곤층'이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1백30만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4백50만명이 빈곤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부유층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빈곤층의 희생이 어느정도 뒷받침됐다고 보아야 한다. 기업과 부유층의 기부를 통해 부(富)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과 부유층은 사회안전망 구축 차원에서 소외계층을 돕는 기부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세계 최대의 국제회의인 스위스 다보스(Davos)포럼의 올해 핵심 화두도 '나눔'이었다. 세계화 흐름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사회 구성원을 함께 끌고 가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 등에 시민들의 참여가 꾸준히 늘고 있다. 세계 각 국가와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과 국민이 소외계층 돕기에 나서고 있는 데도 유독 정부만 팔짱을 끼고 있어도 되는가. 기업과 개인이 기부로 소외계층을 돕는 일은 국가가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정부도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환경 조성에 발벗고 나서야 할 때다. 지난 1950년대에 제정된 '기부금품 모집금지법'은 행정자치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기부금품 모집 허가건수가 연간 10건도 되지 않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법에 명시된 허가 조건과 절차가 현실에 맞지 않고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얘기다. 법과 제도가 기부를 장려해도 부족할 텐데 오히려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있는 단체의 자격을 엄격히 하는 한편,신고만으로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있는 방향(신고제)으로 개정하는 것이 현실에 맞고 기부를 활성화할 수 있다. 현행법은 기부금품 모집은 엄격히 규제하면서도 사용에 대한 사후 관리·감독은 거의 방치하고 있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행정의 표본이다. 일부 단체가 기부금품 사용과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 됐을 것이다. 모집된 기부금품이 투명하게 사용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선결 과제이다. 기부금품의 사용처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 위반사항이 있을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부에 대한 세제 지원을 넓혀 나가야 한다. 먼저 기부자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익단체를 확대해 줘야 한다. 공익활동을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와 같은 법인이 아닌 단체에 기부한 경우도 세제지원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또 기부 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이 개인은 10%인 반면 법인은 5%로, 법인이 개인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하게끔 돼 있다. 기부에 대한 세제지원에 있어 법인을 불리하게 대접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법인에 대한 공제율을 개인과 마찬가지로 10%로 인상하는 것이 공평과세 원칙에도 맞는다. 이제 정부는 기부를 규제 대상으로 본 1950년대 '기부금품 모집금지법' 제정 당시의 시각을 버려야 한다. 정부가 앞장 서 기부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기부가 국민 생활의 일부로 자리할 정도로 기부문화가 활성화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월27일 국무회의에서 '기부금품 모집규제법'에 대해 외국의 입법사례를 검토, 현행법이 타당한지 여부를 검토할 것을 내각에 지시했다. 이 지시가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명지전문대 교수 sktax11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