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변 핵시설을 둘러본 미국 대표단의 일원인 잭 프리처드 전 국무부 대북교섭담당 특사를 통해 북한의 폐연료봉의 이전과 5MW 원자로 가동 사실이 공개됨에 따라 북핵 문제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특히 이번 방북에서도 북한이 종전과 마찬가지로 HEU(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적극 부인한 것으로 확인돼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폐연료봉을 보관했던 저장수조가 텅비어 있었다"는 프리처드 전 특사의 얘기는그동안 '재처리를 완료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감안할 때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영변 핵단지내 재처리 시설로 옮겼음을 확인해주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프리처드 전 대사의 증언으로 미루어 8천개의 폐연료봉의 재처리는 완료됐을 공산이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 대표단의 참관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이전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8천개의 폐연료봉을 다 재처리했을 경우 추출되는 플루토늄의 양은 핵무기 5개를 만들 수 있는 25∼30㎏이며, 현재 5㎿원자로가 가동됨에 따라 연간 6㎏의 플루토늄을 추가로 추출할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영변 핵시설을 공개한 북한의 의도와 관련,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재처리 과정의 일단을 미국측이 직접 보게 함으로써 핵 문제의 시급성을 알려 조속히 협상에 나서도록 미국을 압박하면서도, 핵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HEU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적극 부인하는 전략을 구사한 게 아니냐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15일 "북한은 가능한 한 조속히 미국이 협상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 자기들 주장대로 핵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핵 카드가 핵억제력으로 갈 수 있으니 회담에 어서 응하라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가장 궁금한 것은 미 행정부가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하는 대목이다.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내에서는 지금으로서는 미 민간.의회 대표단의 영변 참관결과를 미 행정부가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할 지 점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자신의 핵능력을 모호하게 평가하며 협상에 소극적인 미정부에게 간접으로나마 핵능력의 구체적 실체를 공개, 조속히 협상에 나서도록 하기위해 영변 핵시설을 공개했지만, 그 파장의 향배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미 민간 대표단이 방북결과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입장을 공개하는 오는 20일 미 상원 청문회가 미 행정부의 향후 대북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상원 청문회에서 미 대표단이 북한의 `핵재처리 완료'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할 경우 이를 계기로 부시 정부는 대화에 적극 나설 수도 있고, 반대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자극해 이전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미 강경파에 힘이 실릴 경우 6자회담 등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그러나 북한의 핵재처리 주장에도 불구,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 여부는 확인할수 없으며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유보적인 판단을 보고하게 되면,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미 온건파의 목소리가 계속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대표단 방북에서 북한이 '텅빈 수조'만을 보여주고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핵재처리시설은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를 노린 '의도된' 행동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또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미 대표단에게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추진하거나 그 프로그램을 추진하기위한 기기나 인력도 없다"고 거듭 밝힌 점도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는 북핵문제가 재연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의 '북, HEU프로그램 시인' 주장을 부인하는 것으로 북핵사태 이후 북한의 일관된 주장이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9.11 테러이후 미국은 플루토늄 추출을 통한 핵무기 개발보다 HEU 프로그램 운영에 더 집착하고 있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HEU 프로그램을 인정할 경우 미국의 압박이 더욱 강화될 것을 우려해 이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장용훈 기자 kjihn@yna.co.kr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