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bbq.co.kr 각종 순위로 본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다. 좁은 국토에서 전쟁의 포화를 이겨내고 50여년 만에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초라한 성적표…. 부패지수 50위,기업투명성 31위. 이처럼 병들어 있는 현실이 경제 성장을 이뤄낸 시간의 두배는 들여야 고쳐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백억원의 검은 돈이 기업과 정치권간에 거래되었음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40여년은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런 거래가 없어도 기업을 하거나 정치적 활동을 하는데 문제가 없으려면 또 그만큼의 세월은 필요할테니 말이다. 이런 현실 앞에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두 가지로 답할 수 있다. 첫째는 바르게 정치하는 사회여야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선진국을 떠올려 보면 모두 정치가 안정되고 앞서간다. 정치는 경제적 문화적 법과 제도를 결정짓기 때문에 사회 발전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마치 기업에서 최종 결재권자가 서명을 함으로써 효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결정이 늦으면 시행도 그만큼 늦어진다. 기업은 스피드 경영으로 바뀌고 있는데 정치는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몸풀기'만 하고 있다. 정치적 활동이 둔해 일어나는 대표적인 피해 사례로 부의 불평등 문제를 들 수 있다. 평수가 조금 더 넓다는 이유로 강북의 아파트가 강남의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보다 세금을 더 내고 있지 않은가. 실제 가격은 강남이 강북보다 몇 배 더 비싸다. 눈에 보이는 데도 쉽게 바뀌지 않는 책임은 분명 이를 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게으름 때문이다. 나머지 한가지 조건은 공동체에 대한 참여의식과 시스템적인 제도의 정착이다. '함께 하는 삶'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돕는자에게는 정서적 만족감 뿐만 아니라 흥부의 박씨처럼 부로 회귀돼 올 수 있음을 말한 적이 있다. 고도의 기술사회는 휴머니즘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 기업이 고객의 정서적인 부분을 보다 섬세하게 매만지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정으로 하겠다고 결단을 내리는 순간 하늘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두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으니 이제는 결단 또한 모두가 내리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