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20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경기 회복이 확인될 때까지는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원화환율은 수출을 뒷받침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방향으로 운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날 외환ㆍ채권시장에 이같은 박 총재 발언이 전해지면서 환율은 14원이나 치솟고 금리는 0.1%포인트 가까이 곤두박질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박 총재가 '한국 경제의 활로 모색'이라는 주제발표에 이어 학계 금융계 기업 등의 전문가들과 가진 토론내용을 요약한다. -----------------------------------------------------------------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최근 국내 경제가 가계금융 부실화, 신용카드 문제, 부동산 투기 후유증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저금리 상황이라서 파국으로는 치닫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금리가 올라가면 큰 혼란이 우려된다. 박 총재 =카드회사의 신규 연체율은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내려와 있다. 이미 발생한 연체를 수습하는 일이 남았는데,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려울 것 같지만 어쨌든 수습국면에는 들어갔다. 지금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경기가 좋아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나 금리를 올리는 문제를 검토할 것이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부원장 =아시아 국가에 대한 환율절상 압력이 높다. 특히 일본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 미국의 압력이 집중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산업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본다. 박 총재 =앞으로 달러화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수출이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쪽으로 환율정책을 운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만 말씀드리겠다. 서갑수 한국기술투자 회장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부진한 데는 금융회사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은행들이 외환위기 이후 리스크가 있는 부문에는 대출을 기피하고 있다. 은행들이 안전 위주 대출에 안주하고 있는 동안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구조조정시장에 과감하게 진출해 투자액의 몇 배가 넘는 과실을 챙겨가고 있다. 박 총재 =한국은행에서는 은행들이 신용과 담보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들에 자금을 적극 대출해 주도록 금리 2%짜리 총액한도대출을 운영하고 있지만, 기업 부도시 뒤따를 손실을 우려해 은행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때문에 신용보증을 많이 넣어 중소기업 금융이 활성화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건영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 =현재 정부는 경제기능의 수도권 집중은 허용하는 대신 행정기능은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이는 거꾸로 바뀌어야 한다. 신도시 등으로 빠져나갔던 사람들이 취약한 교통시스템 때문에 서울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도 문제다. 박 총재 =지금까지의 수도권 억제정책은 대학 정원을 동결하거나 공장 증설을 억제하는 등 직접적인 통제방식을 썼기 때문에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시장논리에도 어긋난다. 이보다는 수도권과 지방의 세율에 차이를 두는 '이원적 세금제도'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의 세율을 수도권보다 30% 정도 깎아주면 자연스레 인력이나 산업시설이 지방으로 이전할 것이다. 그래도 안될 경우엔 50%를 내려주거나 아예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장종현 부즈앨런&해밀턴코리아 사장 =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나 물류중심지 등을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해외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현재의 노사관계나 정치문화를 감안할 때 '국민소득 1만달러'가 한국 경제의 '리미트(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박 총재 =우리 경제가 선진화되려면 정치ㆍ사회ㆍ경제ㆍ교육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원칙을 존중하는 일이다. 사막의 신기루같았던 중동의 두바이가 세계적 금융도시로 부상한 것은 '자유경제의 힘'이었음을 새겨야 한다. 정리=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