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프라이빗 뱅킹(PB) 서비스를 이용하는 '큰손'고객들은 이달 말 발표 예정인 정부의 부동산안정 종합대책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일부 고객은 여전히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기도 했다. 주로 매입하는 '종목'은 중·소형 빌딩과 토지 등이었다. 정부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상품들이라는 게 이같은 추세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신규 투자는 자제하는 대신 보유 중인 부동산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점검하는 큰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보수적인 행보로 전환한 거부(巨富) 가운데는 특히 실거래가 과세 등 강화된 세금정책이 시행되기 전에 자식들에게 부동산을 증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한 시중은행을 찾은 60대 후반 여자 고객이 이같은 경우에 속한다. 30대 초·중반인 딸 셋을 두고 있는 이 고객은 보유 중인 금융자산 5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떼어 딸들에게 증여키로 결정하고 한 명당 10억원 규모의 토지를 물려주기 위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강북에 있는 60억원짜리 빌딩을 판 뒤 새 부동산을 매입,손자에게 물려주려는 80대 할머니도 있었다. "60억원짜리 빌딩을 팔고 50억원짜리 다른 빌딩을 사서 손자에게 증여하려는 특이한 분이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하더라"는 게 상담을 맡은 PB의 설명이다. 큰손들이 요즘 들어 부쩍 증여로 눈을 돌리는 것은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있는 사람'에 대한 세금 중과(重課)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모든 부동산에 대해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겠다"는 정부 방침이 현실화될 것에 대비해 미리 움직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보유 중인 현금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려는 고객들이 많은데 아파트보다 토지를 선호하는 자산가들이 늘어난 것도 요즘의 추세라고 한다. 시중은행의 한 PB는 "땅의 경우 시세에 비해 기준시가가 아파트보다 훨씬 낮은 데다 실거래가 과세가 쉽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