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논란이 분분한 재신임 정국에서도 정치개혁에 대해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3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선거구제 개선, 정치자금의 투명화 등을 촉구한데 이어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도 14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완전 선거공영제, 선거사범 단심제, 후원회 제도 전면 쇄신 등 정치개혁안을 제시했다. 민주당 박상천(朴相千) 대표와 통합신당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 역시 15, 16일대표연설에서 정치개혁안을 무게있게 제시할 예정이어서 각당의 공통분모만 실천에옮겨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엄청난 정치개혁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완전선거공영제와 당내 경선의 선관위 관리, 정치자금의 투명화 부분 등은 어느 정파도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국회 정개특위에서 당장이라도 가시화될 수 있는 부분이다. 정치개혁의 화두는 물론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선언과 함께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먼저 던졌다. 노 대통령이 비록 재신임 선언의 직접적 배경으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등 측근들의 비리의혹에 따른 `도덕성'을 들었지만 `재신임'을 배수진으로 정치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개혁 방향과 관련, 노 대통령은 우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선문제를 들고 나왔다. 중.대선거구제 및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우회적으로 촉구한 셈이다. 또 합법적 정치비용을 현실화하되, 투명성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선거공영제 확대도 국회에 주문했다. 특히 현재 3년인 정치자금법 위반죄의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특단의 결단을 제안했다. 이에 화답해 최 대표는 내년 총선부터 완전선거공영제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고 특정 정당의 내부경선도 중앙선관위가 관리할 수 있도록 하며, 부정이 있으면 선관위가 후보자격을 박탈해 돈 선거 등으로 얼룩진 당내 경선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지구당을 연락사무소 정도로 축소 ▲선거사범 단심제화 및 참심제도입 ▲정치자금 기부금한도 300만원 하향 조정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시 수표나카드사용 의무화 등을 제안하면서 "11월말까지 처리하자"고 서둘렀다.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건전한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미국의 `3달러 체크오프' 제도처럼 개인이 소득세를 납부할 때 1만원이하 일정금액을 정치자금으로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3억이상 법인세 납부 기업의 법인세 1%를 정치자금으로 납부토록 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민주당과 통합신당 역시 정치개혁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앞다퉈 정치개혁특위를 통해 안을 구체화 시키고 있다. 특히 양당은 선관위가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한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인 ▲100만원 초과 기부및 50만원 초과지출시 수표.신용카드 사용과 계좌임금 의무화 ▲100만원 초과 또는 연간 500만원 이상 정치자금 기부자 명단 공개 ▲20만원 이상 선거 비용은 신용카드.수표.계좌임금 등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출 등의 내용을 모두 당론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양당은 또 완전 선거공영제, 당내 경선의 중앙선관위 관리, 선거사범 신속 처벌 등에 대해 한나라당과 이견이 없는 상태다.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비대위 정치개혁소위원장은 "선관위의 정치자금법 개정의견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선관위 개정의견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경우, 그 내용을 당헌.당규에 실천조항으로 반영, 정치자금 투명화에 앞장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통합신당 신기남(辛基南) 의원은 "부패정치를 청산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착수하겠다는 최 대표의 정치개혁 내용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면서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개혁을 모토로 내건 통합신당측은 특히 정치자금 분야에서 기부금을 받을 때도 일정액 이상(100만원)은 수표나 카드를 사용하고 후원자 명단도 공개하는 등의 더 엄격한 투명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노 대통령이 제안한 선거구제개선방안과 같이 중대선거구제 도입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 구상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총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정파간 이해득실이 첨예하게 엇갈린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각당 지도부와 정치개혁특위 위원들은 종래의 제도와 관행에 비해 획기적인 개혁안을 만들고 있지만 통합신당 신기남 의원이 말한대로 "개혁안에 대해 개별의원들이 상당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권의 개혁경쟁이 최근 각종 기업비자금 사건과 관련, 정치자금 문제의 개혁 필요성을 절감한데 따른 것이긴 하지만 저마다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측면도 부인할 없기 때문에 논의와 논란만 거듭하다가 또다시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선거구제 문제와 관련, 한나라당이 소선거구제, 전국단위 비례대표제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과거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했던 민주당이 분당이후 입장에 다소 변화를 보이고 있는 조짐이어서 협상이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선거연령 조정(선관위 의견 19세, 한나라당 20세, 민주당.통합신당 18세), 정치신인 등 예비후보자의 정치자금 모금 허용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각 정파간, 원로와 소장파간 이견이 적지 않은 상황이어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의 일괄 개정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다만 시민단체 등의 압력이 적지 않고, 국민적 요구도 정치개혁을 압박하고 있어 정치권이 마냥 늑장을 부리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점에서 내달중 국회 차원의 정치개혁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김병수 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