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된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결렬돼 각료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하고 각료성명만 발표한 채 공식폐막했다. 이번 각료회의 의장인 루이스 에르네스토 데르베스 멕시코 장관은 최종일인 14일 오후 6시께 148개 WTO 회원국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전체 회의를 열고 각료선언문 대신 짤막한 각료성명을 발표하고 회의 폐막을 공식 선언했다. 새로운 세계무역 질서를 재편하게 될 도하개발아젠다(DDA)의 협상이 `중간합의'의 성격인 각료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함에 따라 내년말까지 일괄타결을 목표로 한 DDA의 앞날에 암운을 드리우게 됐다. 미국의 로버트 졸릭 무역대표부 대표는 회의 폐막후 기자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볼때 (협상을) 기한내에 타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매우 비관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회원국 대표들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회의 참가국 모두가 DDA 협상 진전을 위해 건설적으로 노력했으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하며 "그러나 앞으로 DDA협상을 타결하는 데 필요한 일부 핵심 현안에 대해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우리들은 각국 실무자들이 긴급함과 사명감을 갖고 이번 회의에서 표현된 모든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 핵심 이슈들을 계속해 논의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면서 "앞으로 WTO 일반이사회 의장이 WTO 사무총장과 협력해 오는 12월15일 이전 제네바 WTO 본부에서 각국 고위급 대표들이 참가하는 WTO 일반이사회를 개최해 조율할 것을 요구한다"고 향후 일정을 밝혔다. 성명은 이어 "이번 협상에서 각료선언문이 채택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음에도 불구, 우리는 도하 선언과 결정을 따를 것임을 재확인하고 이를 충실히, 그리고 완전히 이행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임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제6차 WTO 각료회의 일정에 대해 대표들은 홍콩에서 개최한다는 데만 합의하고 시기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 협상 결렬은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30여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주요국 비공식 회의에서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ACP) 그룹 등 개도국들이 싱가포르 이슈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한 데 따른 것이다. 비공식 회의에서 유럽연합(EU)은 싱가포르 이슈의 절반만 협상을 개시한다는 제안을 했으나 ACP 국가들을 비롯해 아프리카연맹(AU), 최빈개도국(LDCs) 등을 중심으로 싱가포르 이슈가 자국들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이 제안에 반대했다. 이에 따라 비공식 회의를 주재한 데르베스 장관은 싱가포르 이슈 합의가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자 이런 상태로는 합의문 도출이 어렵다며 사실상 결렬을 선언하고, 이날 오후 4시 전체 수석대표회의(HOD)를 거쳐 회의를 공식 폐막한다고 밝혔다. 4개 싱가포르 이슈에 대해 13일 발표된 선언문 초안은 무역원활화, 정부조달 투명성 부문만 즉시 협상을 개시하고, 투자와 경쟁 부문은 농업과 비농산물의 시장접근과 관련된 협상세부원칙이 결정된 이후 협상을 시작한다는 쪽으로 결정됐었다. 당초 일정으로 이날 오후 1시로 각국 대표 기조연설을 모두 끝내고 오후 3시께 부터 폐막식에 들어가 합의된 선언문 초안을 상정해 채택하고 차기 각료회의 개최시기와 장소를 결정한 뒤 오후 6시께 공식 폐막할 예정이었다. 당초 첨예한 대립을 보인 농업시장 개방분야로 인해 각국 대표들간에 밤샘 막후 협상이 숨가쁘게 진행되면서 하루 정도 폐막식이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일단 표면적으로는 농업문제가 아닌 싱가포르 이슈에 대한 이견으로 결렬된 것으로 나타났다. 각료회의 선언문 채택은 전체 회원국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어 형식적으로는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선언문 채택이 안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13일 데르베스 장관이 배포한 선언문 초안은 농산물 관세인하 방식과 관련해 개도국에 대해 최소한의 감축률을 인정받는 특별품목(SP)과 일정 비율의 농산물만 제외하고 급격한 관세인하가 이뤄지는 스위스 공식(높은 관세를 더 많이 감축해 일정수준 이하로 감축하는 방식)을 적용하거나 5% 이하의 저관세를 설정토록 했다. (칸쿤=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