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갖고 여야 정치권에 대해 2002년 대선자금의 공개를 거듭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을 통해 `대선자금의 고해성사및 검증'을 제의한 뒤 엿새만에 노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 대선자금 공개를 거듭 제안한 것은야당의 거부로 당시 제안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물귀신 작전' 시비에 휘말리는 등 논란만 가중시켰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희망돼지' 모금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참여정부 정통성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도덕성에 결정적 흠집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판단도 상당부분 작용한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당초 문 실장을 통해 대선자금 공개를 제안하게 된 근본적 배경에는 이를 계기로 정치개혁의 동인으로 삼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는 점에서 이날 특별기자회견은 흐지부지해온 정치개혁의 추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배어있다고할 수 있다. 그간 청와대 주변에선 집권 중.후반기를 좌우할 내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이번 대선자금 논란을 정치개혁 추진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분석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있다. 실제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낡은 정치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개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자 한다"며 "정치개혁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이 자칫 여권으로서도 부담이 될 수 있을지 모름에도 불구, 특별검사수용 의사까지 밝히며 여야 모두에 대선자금 공개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날 특별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제시한 대선자금 공개 방법이나 대상 등은 지난번 문 실장의 제안때와 대동소이하다. 우선 공개범위는 선관위에 신고된 법적 선거자금뿐만 아니라 대선에 쓰인 정치자금과 정당의 활동자금 모두를 포함하고 나아가 대선잔여금 규모와 용처까지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또 단순한 공개만으로는 부족하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철저하게검증을 받자고 제의했다. 다만 그 방식은 여야 합의에 맡기겠다고 밝히면서 검찰은 물론 특별검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대선자금의 입출금 전모를 공개할 경우 우리 경제와 재계에 미칠 파장을우려, 경제계가 자발적으로 공개하거나 수사를 하되 자금을 제공한 기업이나 기업인은 철저히 비공개로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노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호응으로, 여야특히 한나라당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제안 그 자체로써 끝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민주당이 먼저 공개함으로써 한나라당을 압박할 수도 있으나 노 대통령이회견에서 "여야가 함께 공개하지 않으면 공개한 쪽만 매도되고, 정치개혁에 아무런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듯이, 야당의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만먼저 공개하는 상황은 현재로서 상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 대통령의 이날 특별회견을 계기로 대선자금 공개에 대한 시민단체 등여론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한나라당을 옥죌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이에선뜻 응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한나라당은 이날 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물귀신 작전'이라고 역공을 취하며 여당의 `선공개'를 주장했다. 이와함께 노 대통령이 각 당의 대선후보가 공식 확인된 시점 이후 자금 부분에대해 공개하자는 부분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지난해 4월 27일, 한나라당은 지난해 5월 10일 각각 대통령후보를 선출했음을 감안하면 그 후에 치러진 6월 13일 지방선거 당시 사용한 정치자금 부분은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당시 지방선거가 양당 모두에 당운을 건 양보할 수 없는 한판으로, 대선전초전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자치선거 비용도 큰 논란이 될 가능성이농후하다. 결국 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내년 총선이후 강력한 정치개혁 추진의 동력을확보하려는 `정면 승부수'로 볼 수 있으며, 야당도 명분있는 대선자금 공개를 마냥거부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선자금 공개 논의는 어떤 형태로든 급물살을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연합뉴스) 조복래기자 cb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