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가로등 불빛에떠는 희부연 길 위에 기우는 수평선, 기우뚱거리는 하늘 위에 마라, 네가 어떻게, 왜 여기에... 마라, 네가 왜, 어떻게 여기에"(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인 이성복(51.계명대)씨의 다섯번째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 刊)이 이달말께 출간된다. 지난 1993년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이후 10년만이다. '물집'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진흙 천국' 등으로 나뉘어 모두 125편의 시가 수록된 시집은, 지난 10년간 시인의 은둔이 '시 쓰기' 그 자체와 맞선 인고의 시기였음을 강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지난 세월 씌어진 것들을 하나의 플롯으로 엮어 읽으면서 해묵은 강박관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길은 돌아나올 수 없는 길, 시는 스스로 만든 뱀이니 어서 시의독이 온몸에 퍼졌으면 좋겠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은 곤혹의 지지부진"이라는 '시인의 말'에서 그것은 시사된다. 시인은 세련된 언어조탁과 모던한 시풍, 서정적 시적 자아 등의 요소로 시인 황지우와 함께 가장 많은 독자군을 가진 인기작가이다. 김수영문학상을 탄 첫 시집「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비롯 「남해금산」, 「나는 왜 비에 적는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등으로 문학적 성취도 인정받았다. 이번 시집은 도처에 등장하는 '마라'라는 명령형 불완전용언에 주목함으로써 전체적인 주조를 읽어낼 수 있다. "마라, 네 눈속에 내가 띈다 내 다리를 묶어다오..)(내 몸 전체가 독이라면), "작은 꽃들아 얼굴을 돌리지 마라 나는 사람을 죽였다..) (작은 꽃들아, 이상한 빛들아), "당신이 동곡에 간다 하면 나는 말릴 것이다 동곡엔 가지 마라.."(동곡엔가지 마라) 시인 강 정씨는 해설에서 "'마라'는 금지다. 한국어에서 그것은 금지형 명령어로 쓰인다. 동시에 '마라'는 유혹이다. 그것은 언어 이전의 언어, 옥타비오 파스의 말마따나 '리듬이면서 또한 대립되는 것들을, 삶과 죽음을 한마디로 껴안는 이미지'"라고 말했다. 과감한 시적문법의 파괴 등 궤도를 벗어난 이탈로 한발짝 시대를 앞서왔던 그의 시가 이번 시집에서는 외려 '돌아보고 껴안는' 고통스러운 관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채롭다. 경북 상주 출신인 시인은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 1977년 겨울호로 등단했다.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