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은행 총재는 2분기 경제성장률이 3%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으며, 금년의 경제성장률이 4%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미국의 골드만삭스증권은 금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4.3%에서 3.3%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의 경기상황을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현재는 통상적인 경기순환과정의 하나인 경기침체기이며 조만간 회복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이 시각에 의하면 이번 경기침체는 북핵문제와 사스, 그리고 미국의 침체 등 외부적인 요인이 주원인이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3.7%에 불과했지만 이는 선진국과 비교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2분기가 경기저점이며, 사스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세계경기의 회복이 기대되는 3분기부터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다. 한국경제의 상황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시각이다. 반면, 현재 경기상황은 순환상의 침체국면이 아니라, 벗어나기 어려운 침체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이 시각에 의하면 한국은 국민소득 1만달러라는 덫에 걸려 거의 10년을 헤매고 있으며, 지난 5년 동안의 한국경제 성장은 환율하락 벤처거품 신용카드거품, 그리고 부동산 버블이 만들어 낸 순간의 파티에 불과했다. 이제 오로지 돈 때문에 증권시장이 상승하는 마지막 파티가 기다리고 있으며, 이 파티의 끝에는 암울한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경제를 지극히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비관적인 시각이 일부의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경제체제에 대한 지금의 혼란스러운 갈등 상태가 계속된다면 비관적인 시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단기적인 경기변동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을 깰 수 있는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 경제체제 갈등의 기저에는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와 다국적 코리안 내셔널리즘의 충돌이 자리잡고 있다. 양자는 기업 및 재벌 문제,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 노동조합 문제, 그리고 성장과 분배에 이르는 철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경제문제에 대한 해법에서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충돌은 어느 한쪽의 완승, 또는 완패로 귀결될 수 없다.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시대와 지역, 그리고 사람들에게 획일적으로 통용되는 경제체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경제체제도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기와 지역, 그리고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적절히 진화돼야만 비로소 제 기능을 최대화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빈국에 미국식 시장경제를 접목한다고 해서 그 국가가 단기간에 미국처럼 부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을 1만달러의 덫에서 건질 수 있는 경제체제로서 '한반도형 시장경제'란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 개발독재시기에 한국형 민주주의의 암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이름에서부터 강한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미국형 시장경제의 보편성을 신봉하는 시장만능주의자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소규모 개방경제, 남북분단국가에 상존하는 컨트리 리스크, 중국 일본 등의 경제대국과 근접한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국민소득 1만달러라는 우리 환경은 선진국의 경제환경과 분명히 다르다. 한반도의 경제환경은 한반도형 시장경제를 필요로 한다. 한반도형 시장경제의 핵심은 실용주의이며, 시장원리를 최대한 존중하되 글로벌 스탠더드를 맹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개방으로 인한 국민경제적 성과가 일부 산업의 피해보다 크다면 개방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국민소득 1만달러 상태에서는 우리가 가진 경쟁력의 원천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이 창출될 때까지 기존의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성장의 과실을 분배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해서 성장의 기회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한반도형 시장경제라는 화두가 경제체제에 대한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경제를 10년 1만달러의 덫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 shkang@sungsh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