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운 형편에 조흥은행 매각을 반대하는 이 은행 노조가 전격 파업에 돌입했다. 신한지주로의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정부의 태도로 보건대 노ㆍ정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조흥 처리를 새정부가 친시장정책으로 전환하는지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않다. 조흥은행 매각 문제가 이렇듯 노ㆍ정대립 양상을 띠게 된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조흥은행 문제는 노동문제라기보다는 한치 앞이 안보이는 경쟁력 약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어떤 금융시스템을 가지고 미래 성장산업을 개척할 것인지의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경제를 생각할 때 제기되는 의문은 조흥은행에 투입된 2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을 꼭 이 시점에서 회수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는 조기회수가 중요하다며 조기 민영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공적자금을 투입할 당시 목적이 금융시스템의 붕괴 방지를 통한 국민경제의 안정성 확보였다면, 회수 목적 역시 조기회수보다 은행산업 안정과 경쟁력 확보에 두어야 한다. 더구나 조흥 매각은 신한은행과의 합병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은행업에 합병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중차대한 사건이다. 따라서 은행 대형화의 국민경제적 영향을 고려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간의 은행합병이 과연 국민경제에 어떤 도움을 주었나를 묻는다면 별로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할 수 없다. 97년 외환위기는 경제적 가치판단을 뒤집는 전환점이었다. 성장의 주력이던 재벌계 대기업과, 그 대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며 성장해온 시중은행 모두가 환란의 주범으로 몰렸다. 과거 경제시스템의 작동메커니즘 일체가 비효율적이었다고 매도당하면서 대기업 여신을 담당해온 조흥 외환 한일은행 등도 일거에 부실은행으로 매도당했다. 대신 가계여신 등 소매금융에 주력해온 은행들이 우량은행으로 급부상했고, 이들이 2001년 국민-주택 합병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는 은행합병을 주도해 왔다. 소매금융에 주력하는 은행들이 은행산업을 리드해감에 따라 은행권의 소매금융 확대는 필연적이었다. 더구나 은행들의 소유ㆍ지배구조가 주식시장의 영향권 하에 들어가 주주들이 주주가치 경영을 요구하고,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 역시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경영개선 양해각서(MOU) 달성을 위한 수익성 위주 경영을 요청받음에 따라 단기 수익성 위주 경영이 은행산업 전체에 고착화됐다. 은행들은 몇년을 내다보지 못한 채 단기 시야의 영업에 주력했고, 당장 수익이 나는 가계여신 카드여신에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이로 인해 기업투자가 줄어들고 경기가 하강하자 김대중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규제 완화로 가계 및 카드여신을 더욱 부추겼다. 그 결과가 지금 터지고 있는 카드채 문제, 그리고 부동산 투기로 몰려드는 4백조원 부동자금의 문제다. 세계경제의 후퇴 등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그간의 잘못된 재벌개혁 금융개혁이 작금의 경제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업투자 기업금융 강화보다는 가계소비 가계금융 확대를 유도한 것이 지난 5년간의 기업ㆍ금융개혁이었다. 가뜩이나 은행권의 기업여신이 위축된 마당에 기업여신 노하우를 가진 은행을 부실처리 차원에서 매각하는 것은 당면 경제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는 방안이 아니다. 선진국 연구결과에 따르면 은행합병의 효과는 별로 크지 않다. 설령 수익성 증대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아직 산업화를 완성하지 못한 한국과 같은 후발국 경제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장기 시야 기업금융 능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더욱 의심스럽다. 은행대형화의 경제효용이 의심스러운데 반해 극한대립 양상의 조흥 매각이 당장 야기하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너무나 크다. 그런데 지금의 열악한 경제 상황은 대규모 사회충돌 비용까지 감당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따라서 노ㆍ정간, 그리고 은행간 대타협의 정신이 필요하다. 국제신인도를 감안해 조흥을 신한지주에 넘기더라도 3년간 독자생존을 보장하고 3년 뒤 두 은행 합병 여부를 국민경제적 기준에서 냉정하게 재평가하는 옵션도 가능하다. 정부와 노조, 신한과 조흥이 공생하는 지혜를 짜내야 할 시점이다. ----------------------------------------------------------------- ◇ 시론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