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의 섹스박물관 입구에는 황금빛의 커다란 남근이 놓여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안으로 들어서면 유럽 성(性)문화의 원점이랄 수 있는 로마시대의 성풍속이 밀랍인형과 마네킹으로 생생하게 재구성돼 있다. 암스테르담의 섹스박물관에는 어느 매춘부가 유곽에서 20여년 동안 일하면서 쓴 일기가 전시돼 있는데,그가 상대한 남성이 무려 5천명이나 됐다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성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조명하고자 하는 '섹스박물관'은 세계 웬만한 도시에 하나쯤은 있다. 바르셀로나와 베를린에 있는 에로틱박물관,일본 규슈의 남근박물관은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을 만큼 명소로도 자리잡았다. 뉴욕 맨해튼의 섹스박물관은 섹스에 편견 없이 접근해 보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가을 문을 열었는데,19세기의 사창가에서부터 섹스파티에 이르기까지의 자료를 전시해 섹스문화변천사를 일별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처음으로 서울에서도 경복궁 인근에 성박물관이 개관됐다. '동양 성문화 박물관'이란 이름의 이 박물관은 한국의 민속신앙에 나타난 성 관련 유물과 조선시대의 춘화를 비롯 티베트불교와 힌두교와 관련된 에로틱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이를 두고 며칠 전 LA타임스는 "오랜 세월 유교의 도덕규범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에로스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중대한 사건"이라며 "이는 한국인들이 개방돼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보도했다. 우리사회에서는 아직 성과 관련된 문제를 공개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거부반응이 만만치 않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성을 백안시할수록 성지식이 왜곡되고 성문란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려 성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성타락을 부추길 것이라고 강변한다. 청소년들의 의식 조사에서 나타나듯 섹스는 이제 은밀하게 얘기할 성질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성을 죄악시하기보다는 누구나 행복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에로스박물관이 한국의 성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