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德根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통상법 >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에서 미꾸라지를 튼튼하게 할 '가물치 유용론'을 펴며,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조기개시 필요성을 제기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가동되고 있는 산·관·학 공동연구회의 결론에 따라 내년 이맘 때쯤 협상개시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에서,이르면 연내에도 FTA 협상이 개시될 듯하다. 한·일 FTA는 기존의 무역협상이나 시장개방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다. 우선,그간의 시장개방은 우리의 주력생산품인 공산품의 수출시장 개척에 대한 대가라는 면이 있어,언제나 우리의 산업부문에서 큰 지지를 얻어왔다. 그러나 한·일 FTA에서는 항상 시장개방정책에 반발해 온 우리의 농수산물업계가 수혜산업이 되어 있고,전통적으로 시장개방정책의 최대수혜자인 제조업계가 최대의 피해산업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대부분 공산품분야에서 발생한 대일교역에서의 누적적자가 2천억달러에 달한다는 통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아직도 우리의 산업경쟁력이 일본과 견주어 전반적으로 미진한 데 기인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막대한 대일무역적자는 우리의 경제발전과정에서 형성되어 온 산업과 경제구조를 반영한 것이며,아직까지 그 자체로서 우리의 경제성장에 큰 문제를 야기한 바는 없다. 따라서 무역적자 개선 자체가 한·일 FTA의 목표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일 FTA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무역수지 개선이 아니라,서비스시장 개방 등 기본적으로 전방위적인 시장환경의 개선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경제환경 개선이야말로 일본뿐만 아니라 여타 선진국들으로부터의 투자 기회를 개선하고,양질의 자본과 기술을 유입하게 하는 동인(動因)이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이 이미 체결된 한·일 투자협정에도 불구하고 FTA가 실질적으로 대일(對日)투자 유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이유다. 지금까지 한·일 양국은 전세계 시장에서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가장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시장에서는 서로에 대해 매우 폐쇄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다. 일본 내에서 한국상품은 소위 '민민규제'라는 민간업계들에 의한 눈에 보이지 않는 비관세장벽들에 의해 제대로 소비자들에게 알려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국은 수입선다변화라는 명목으로 일본제품의 수입을 규제해 왔다. 한국은 1999년 6월 이래 수입선다변화제도를 포함하여 모든 대일 수입규제를 철폐하고 있으며,일본 역시 대한(對韓)수입규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없다. 이제 양국이 FTA를 통해 비합리적인 정부 또는 민간의 규제를 해소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게 되는 경우,양국의 상호간 수출입과 경제교류가 대폭 개선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를 위해서 불합리한 민간의 규제는 정부가 풀고,비효율적인 정부의 규제는 민간이 풀어내는 적극적인 경제환경의 개선정책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우,단기적으로 대일무역적자 규모의 확대도 예상되나 이는 양국간 교역규모 자체의 확대에 따른 것일 뿐 특별히 무역구조나 산업구조의 악화에 따른 것은 아니다. 한편 한·일 FTA 논의가 진전될수록 이에 의한 산업피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도요타자동차의 수입가격이 낮아져 소비가 늘고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회사들의 품질향상 노력과 서비스개선이 이뤄지는 것은,산업피해가 아니라 바로 시장개방에 의해 우리 정부가 바라는 소비자 후생증진이요 생산부문의 기술력과 생산성의 개선이다. 따라서 섣부른 피해보상정책보다는 중장기적인 산업 구조조정 개선정책에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소니TV가 많이 팔린다고 삼성전자에,도요타자동차가 잘 팔린다고 현대자동차에 보상금을 주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한·칠레 FTA에 의한 농업부문 보상책이 답습될 수 없는 구조적인 차이가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기업들은 가물치에 쫓길 미꾸라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한창 크고 있는 새끼가물치도,혹은 더 넓은 터가 필요한 왕가물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dahn@kdischool.ac.kr -------------------------------------------------------------- ◇시론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