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Cliche)'는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원래는 활자를 넣기 좋게 만든 연판(鉛版)이란 용어였는데 19세기 말부터 별 생각없이 의례적으로 쓰이는 문구나 기법 혹은 편견 전형 등의 의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알렉산더 포프(1688∼1744)는 18세기 엉터리 시인의 작품중 '시원한 서녘 산들바람' 다음엔 으레 '나무들 사이에서 속삭인다'가 나온다고 꼬집었거니와 오늘날 영화엔 온갖 클리셰가 등장한다. 여주인공은 결정적인 순간 위기에 처해 남자에 의해 구출되고,악당은 사로잡은 주인공을 곧장 처치하지 않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 역습당하는 식이다. 지극히 상투적이고 비현실적인 데도 계속 차용되는 건 그안에 사회적 통념이 반영되는 탓으로 여겨진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중 하나인 '오셀로'의 비극은 바로 이 '클리셰'로 인해 빚어진다. 내용은 간단하다. 이아고는 자기 대신 실력도 없는 캐시오가 부관으로 임명되자 앙심을 품고 오셀로를 파멸시키려 결심한다. 일단 캐시오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려 해임되게 한 뒤 오셀로의 부인 데스데모나에게 통사정하게 하고 오셀로에게 둘의 관계를 의심하도록 부추겨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금만 주의깊게 살피면 진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도 모두가 이아고의 말만 믿고 파멸에 이르는 건 이아고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오셀로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 사실 여부를 알아보지도 않은채 이아고의 말을 퍼뜨린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오셀로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클리셰가 아무 검증 없이 번지고 있는 까닭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개혁의 대상이고,부자는 부정하고,햇볕정책을 반대하면 민족애가 없고,인권과 환경을 내세우면 옳고 경제논리를 주장하면 상업적이라는 투가 그것이다. 클리셰의 확대재생산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잘못된 클리셰가 더이상 양산되지 않도록 사물의 이면을 한번쯤 뒤집어 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