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월가는 미국기업들의 꿈이었다. 기술력만으로도 기업가치를 수십배 수백배로 높일 수 있는 환상의 시장이었다. 증시거품이 꺼진지 3년,이제 월가에 등 돌리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뉴욕증시는 이라크전쟁 종료와 소비자신뢰지수 회복 등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어렵게 키워온 기업을 월가로 가져가려는(공개) 기업은 줄고 있다. 요즘 미국신문들을 보면 상장을 꺼리는 기업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90년대 말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자본주의가 만개한 미국에서 그 자본주의의 꽃인 증권시장 진출을 외면한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연인즉 상장기업에 대한 회계감사가 까다로워졌고,공개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증권당국의 철저한 감시를 받아가면서 회계장부를 투명하게 유지하기 위한 행정적 재정적 부담도 크기 때문이란다. 에너지기업 엔론과 통신기업 월드컴의 대규모 회계조작사건이 터지자 미 의회는 기업의 회계감사를 강화한 법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기업들이 증권관리위원회에 내야 하는 서류가 늘어났고,회계 및 법률분쟁에 대처하기 위한 전문인력 보강도 필요해졌다. 그 과정에서 공개비용도 늘어났다. 매출 규모가 연 10억달러 정도되는 기업이 상장기업의 자격을 유지하는 비용은 2∼3년 전만 해도 연 1백만달러였으나,이제는 2백만달러를 훨씬 넘는다. 연간 영업이익이 2백만달러인 기업도 1백만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상장 즉시 자산가치가 수십배 수백배로 뛰던 3년 전이라면 별 문제가 안되는 비용이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진 요즘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1백52년 된 돌(Dole) 푸드,서부에서 인기 높은 스포츠클럽,소프트웨어 회사인 레조닛도 공개를 포기했다. 회계 스캔들을 막기 위한 당국의 감시와 규제 강화가 일부 기업들로 하여금 월가를 외면하게 만드는 역풍을 낳은 것이다. 기업 공개를 꺼리는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행정조치가 의외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