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반도 통일이 된 날을 그려보자.우선 서울거리에서 누가 북쪽 출신인지 금방 구별될 것이다. 지난 30년 간 남한 청소년의 평균신장은 8∼9㎝ 커졌다. 반면 1990년대에 북한에서는 인구의 60% 이상에서 자식세대가 부모세대보다 체격이 오그라드는 이른바 '세대간 역(逆)성장(generational stunting)'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머리 하나는 작은 체구,부실한 이목구비를 갖춘 이들은 '북인(北人)'으로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개방화 현대화된 통일국가에서 북인은 무능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반도의 남북 어디서나 정부 회사 등 웬만한 조직의 윗자리·요직은 남한출신이 차지하고,수위 청소부 식당종업원 같은 일이 북인의 몫일 것이다. 그때쯤이면,과거 북의 인권에 일언반구 없던 사회단체들이 앞장서서 남북인 차별금지니 고용평등이니 외치고 다닐 것이다. 누가 북한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원흉은 물론 그들의 지도자이다. 세계가 IT 혁명으로 급성장했던 지난 10여년간 북한의 소득은 반 이상 하락했고,몇백만명의 인민이 굶어죽었는지 모른다. 인민의 어버이 수령은 그 자식들을 유아독존의 체제에 가두어 날로 바뀌는 세계를 보고 듣고 경험할 기회를 철저히 차단했다. 이들이 어떻게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교육과 정보화로 훈련된 남인(南人)들을 당할 것인가. 북의 체제가 오래 유지될수록 하등국민 지위는 더욱 고착되고,그 신분은 자식들에게 세습될 것이다. 그런데 남쪽에서는 책임이 없는가? 북한의 지도자가 개방을 미루는 것은 스스로의 정권유지를 위해서이다. 그 덕에 자신은 화려한 궁전에서 프랑스산 최고급 포도주와 자본주의 남쪽 문화를 즐기고,수많은 동상과 기념물을 세울 수 있었다. 많은 돈이 폐쇄체제의 유지와 인민통제의 목적에 쓰이고,스위스은행에도 상당히 비축했을 것이다. 여기에 남한의 집권자 정부 기업에서 퍼준 현금이 얼마나 기여했을 것인가. 지난 DJ정부는 북한인권문제가 유엔에서 상정되는 것조차 막으려 했다고 한다. 이에 비한다면 북의 인권현실을 알지 못하노라 밝힌 국가인권위원회나,이를 규탄결의하는 유엔인권위에 불참한 현 정부의 행보는 표창받을 일인가….국가인권위 전교조 기타 수많은 한국의 양심단체들이 북의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목적을 앞세워 활동양식을 선택하는 점에 있어 이들도 북의 지도자와 다를 바 없다. 한달 전 시민단체들은 이라크 파병의 부도덕성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 전쟁통에 수백,수천의 민간인 사상자가 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사담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에서 수천만 국민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참상에 그들은 관심이 있었던가. 오늘날 미군 점령 하의 이라크인들은 반미 구호를 마구 외치고 와중에 미군에게 돌을 던지다 총격 받아 죽고 다치는 사태도 나온다. 이런 반(反)권위적 행동을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는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들은 최소한 새로운 세상을 세울 기회를 맞은 것이다. 북한인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없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북한인권문제를 시비하고 나왔으니 소위 '동포'로서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 북의 인권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북 정권의 입지만 도와준 현 대북정책이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런 정책을 부채질하고 북의 인권에는 고의적 무관심으로 일관한 한국의 양심단체도 방조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DJ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북한정권을 유지시켜 개혁으로 인도하는 것이 장기적 견지에서 대북 문제를 풀고 북한인권문제도 해결하는 길'이라고 천명한다. 인권은 인사치레고 계속 '북한 지도자님'에게 퍼주어 평화를 사겠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항상 조직된 세력에 핍박받아왔음을 주장해온 현 정권이 취할 도리인가. 과거의 대북정책은 북핵 해결이나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된 바 없고,북 정권에는 못된 버릇만 심어주었다. 이제는 한국의 정부 인권 양심단체들이 보다 넓은 안목,진정한 양심으로 새로운 진로를 선택할 때가 왔다. kimyb@cau.ac.kr -------------------------------------------------------------- ◇ 칼럼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