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된 SBS 드라마'올인'의 종영식장에 참가한 우근민 제주도지사는"스스로 관광객이 찾아오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요지의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드라마나 영화 등 문화 상품 하나가 파생시킨 효과가 그 어떤 홍보전략보다 탁월함을 실감했다는 얘기.최근 제주를 찾은 이들이라면 우지사의 이 발언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중문단지의 한 식당 주인에게 요즘 관광객이 부쩍 늘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지자 별 대답 대신 활짝 웃어 보이기만 했다. 말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좋다는 의미. 요즘 제주는 시쳇말로'대박'이 터졌다. 이미 지난 4월 1일에는 제주도를 찾은 내외국 관광객 수가 1백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사스와 이라크전으로 인한 해외여행객 감소가 일종의 반사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드라마'올인'을 비롯한 주요 드라마,영화 촬영지들의 공도 제주 붐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제주는 지금 그야말로 로케이션의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 영화 촬영지 여행의 붐은 이미'쉬리'의 흥행 성공에서 시작되었다. 중문 해수욕장이 발치에 펼쳐진 신라 호텔 뒤편 벤치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좇아 나선 사람들.아예'쉬리의 언덕'으로 이름 붙여진 이 곳은 제주 여행의 명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장동건,고소영 주연의'연풍연가'는 제주 로케이션 붐을 본격적으로 예고했던 영화.제주 관광 가이드라는 여주인공의 특성을 한껏 살려 거의 모든 장면이 제주에서 촬영되어 화제가 되었었다. 대표적인 촬영지가 산굼부리.북제주군 중산간 지대에 위치한 이 곳은 둘레 2km,깊이 100m의 움푹 패인 분화구 지대이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분화구의 장관은 물론 인근의 평원과 지형이 한 눈에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분화구 안에 420여 종의 희귀 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자연사 연구에도 가치가 있는 이 곳은 극중 여주인공의 가이드로 두 사람이 처음 찾는 관광지로 등장한다. 착시로 인해 음료수 캔 따위의 물건들이 거슬러 오르는 듯 보이는 인근 도깨비 도로 역시 영화를 통해 더 잘 알려졌다. 남제주의 송악산,마라도,어장 체험장을 비롯 제주 대부분의 관광명소들 역시'연풍연가'에 실려 전국으로 전해졌다. 송악산의 경우 한국의 케이프타운 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독특한 화산 지형을 자랑한다. '희망봉'을 대신하는 전망대에서는 둘로 나뉘어진 채 나란히 파도를 맞는 형제도와 함께 맑은 날이면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한 눈에 끌어안을 수 있다. 산굼부리에서 동쪽으로 1112번 도로를 타고 가는 곳에 아부오름(앞오름) 삼나무길도 영화 덕에 유명세를 탔다. 건영목장으로 향하는 도로 좌우에 빼곡이 들어선 삼나무 숲길을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도로 끝에 위치한 높이 50여 m 의 아부오름은 영화'이재수의 난'이 촬영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1890년 제주에서 일어난 민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제주 곳곳의 오름과 산지에서 촬영되었던 영화.아부오름은 걸어서 10분 남짓 걸리는 낮은 오름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전혀 뜻밖의 장관이 펼쳐진다. 1백여 미터 아래로 깊숙이 들어간 분화구와 의외로 커다란 오름의 규모가 한 눈에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저 아래 분화구에는 삼나무가 마치 요새처럼 둘러져 있는 신기한 풍경과 맞닥뜨린다. 영화 역시 이 곳 삼나무 요새에서 촬영되었다. 누가 왜 이 곳에 심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생한 것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삼나무가 제주의 토종 수목은 아니기 때문.일반인들의 발길이 뜸하고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의 비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이 외의 대부분 장면들은 성읍 민속 마을에서 촬영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서 요즘 제주가 인기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데는 드라마'올인'의 공이 크다. 촬영지의 인기도를 좌우하는 것은 작품의 흥행 여부.제주의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던'이재수의 난'이나'연풍연가'의 제주특수는 단 한 장면만이 등장했던'쉬리'의 그것에 비교할 바가 못될 만큼 미미했다. '올인'의 대표적 촬영지인 섭지코지가 대표적인 예.요즘 주말이면 섭지코지로 이르는 해안도로는 거의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아예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걸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섭지코지란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해안 지형을 일컫는 제주 방언의 합성어.원래 이 곳은 깎아지르는 화산암절벽과 에머랄드빛 바다로 인근의 성산일출봉과 함께 주요 관광지로 대접받던 곳이다. '올인'에서 등장했던 해안절벽 위의 그림 같은 성당과 극중 인하(이병헌 분)가 약속했던 언덕위의 하얀 집이 사람들을 섭지코지로 불러모은다.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세트장을 찾아 온 이들은 성당과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다. 비록 속은 텅빈 껍데기에 불과한 세트이지만 드라마의 감동을 자신의 것으로 한껏 끌어안으려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거나 까마득한 화산 절벽의 절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극중 정원(지성 분)이 수연(송혜교 분)에게 프로포즈를 암시하는 장면은 중문단지 내의 테디베어 박물관에서 촬영되었다. 이미 1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곰인형 테디베어의 천국.역사적 인물,영화 속 상황,한 시대의 유행 등을 곰인형으로 표현해 놓기도.이 가운데서 다이애너와 찰스 황태자 곰 인형을 바라보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또 한 번 자극했다. 이 밖에도 중문단지 내의 특1급 호텔과 카지노 등은 드라마 내내 제주 여행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어주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 혹은 세트장을 테마로 한 여행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특히 세트장의 경우 관리가 소홀해 점점 흉물로 변해 가는 것은 물론 덩달아 사람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저 한 때의 붐에만 그치고 마는 것.국내 테마 여행의 맹점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셈이다. 깊이는 없고 한 때의 유행에 급급하다 보면 그나마 원래 지니고 있던 관광지로서의 가치도 반감될 지경에 이를 수 밖에 없다. 드라마가 종영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섭지코지 위에 지워진'언덕위의 하얀 집'이 그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찢어진 채 펄럭이는 커튼과 휑한 창문은 누가 봐도 폐가에 가까운 모습이다. 글=남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