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남부 안 나자프에서 10일 피살된 시아파 성직자들은 후세인 정권의 붕괴에 따른 권력 공백상태에서 희생된 첫 제물로 이들의 죽음은 앞으로 전후 재건과정에서 미.영 동맹국이 겪어야 할 위험이 어떤 것인 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시사주간 타임 인터넷판이 이날 보도했다. 숨진 아야툴라 압둘 마지드 알-코에이는 이날 시아파 최대성지인 이맘 알리 사원 운영권을 놓고 사담 후세인 정권의 비호를 받아온 경쟁자 하이데르 알-카다르와만나던 중 군중 속에 있던 공격자들로부터 칼을 맞아 알-카다르와 함께 비명 횡사했다. 이들의 죽음은 수적으로는 다수이면서도 집권 수니파의 탄압을 받아온 시아파의정치적.종교적 역할을 둘러싸고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려는 극도로 민감한 순간에 일어난 것으로 앞으로 후세인 이후 이라크의 안정을 추구하는 미.영 동맹국에게도 어떤 위험이 닥칠 것인지를 말해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시아파의 양대 가문중 하나의 후손인 알-코에이는 10년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2주전 미군의 도움으로 귀국했다. 그의 아버지 대(大)아야툴라 압둘-카심 알-코에이는 후세인 정권 치하인 1992년 가택연금 상태에서 사망했다. 현재 시아파의 정신적 지도자인 대 아야툴라 알리 알-시스타니 역시 가택연금상태에 있다 지난 주 미군의 진격으로 풀려났다. 전체 인구의 3분의2나 되면서도 후세인 정권에서 소외돼온 시아파의 지지를 얻는 일은 앞으로 미국이 어떤 정부를 세우든 불가결한 것이며 미군이 알-코에이의 귀국을 도운 것도 이같은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알-코에이는 친서방 노선을 취해온 인물로 시아파 성직자들에게 미국이 주도하는 과도정부를 지지하도록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피살될 당시 그는 미군이 비행기로 나자프에 실어나른 아랍권 기자들에게 연설할 예정이었으며 이번 전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평가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사원에 대한 미군의 접근은 금지돼 그의 신변경호는 자신의 지지자들이맡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알--코에이는 자신이 대 아야툴라 알리 알-시스타니(73)의 후계자라고 자처하고있으나 아버지 알-코에이 이전의 대 아야툴라의 아들인 대 아야툴라 모하메드 바키르 알-하킴의 영향력에 밀리고 있었다. 대 아야툴라인 하킴은 알--코에이보다 율법상 더 높은 지위에 있으며 외부세계에도 이라크 이슬람혁명 최고위원회(SCIRI) 지도자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SCIRI는 테헤란에 있는 망명 기구로 전쟁 전에는 이라크의 시아파 단체중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국은 전쟁 개시 전 6개 망명단체로 구성된 잠정적인 연합체에 SCIRI를 끌어들였으나 한편으로는 알-하킴에게 1만명에 이르는 휘하 게릴라들을 이라크 국내로보내지 말도록 제지했다. SCIRI의 알-바드르 여단은 이란의 혁명수비대로부터 훈련과 무장을 제공받은 조직으로 미국은 이들이 이란 강경파의 대리인 역할을 할 것을우려했던 것이다. 알-하킴은 지난 7일 수일내로 귀국하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알-코에이에게는 또 다른 경쟁자 물라 알-사드르가 있었다. 그는 이 지역에 공급되는 구호물자를 장악하겠다는 야먕을 품고 미군에게 다리를 놓고 있었으나미군은 그가 상당한 재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미루어 그 역시 이란으로 지원을 받는것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의 시아파와 이란의 종교 지도층은 매우 복잡한 관련이 있다. 많은 이라크인 성직자들이 이란-이라크전 직후 후세인의 박해를 피해 이란으로 달아났으나이들은 이란의 시아파에 맞서 독자 국가 건설을 추구해 왔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시아파의 신학적 전통이 강경파 이란 지도부에 비해 훨씬 진보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자유작전'을 보는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들의 반응은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알-코에이는 미군과 유대를 맺어 왔지만 알-하킴의 조직은 지지자들에게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도록 지시해왔다. SCIRI는 후세인이 더 나쁜 존재이므로 그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미군의 침공에 호응해 봉기를 일으켜지도 않았다. 이들은 1991년 미국의 배반을 지금도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1991년 걸프전도중 SCIRI 반군이 이란으로부터 대규모로 몰려오자 당시 부시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지 않았다. 지금 SCIRI 관계자들은 미국의 의도에 대해 의심을 감추지 않고 있으며 미군이후세인 축출 이후에도 이라크에 머문다면 이들을 향해 무기를 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알-코에이의 지지자들은 그러나 그를 죽인 것은 경쟁 세력이 아니라 사담 후세인이 보낸 암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란은 알-코에이의 귀환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란국영 통신사는 지난 8일 알-코에이와의 인터뷰를 실었으며 이 인터뷰에서 알-코에이는 미.영군이 시아파 사원은 건드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았다면 미군의 주요 협력자로 부상했을 성직자의 죽음은후세인을 대신할 새 지도부를 구축하는 일이 그를 무너뜨리는 일 만큼이나 험난할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