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동향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셀 코리아(Sell Korea)를 하고 떠나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다. 이라크전쟁,북핵문제,SK글로벌 사태,카드채 부실문제 등등 호재는 보이지 않고 온통 악재뿐이니 아무리 장기투자를 하는 외국인이라 해도 결심이 흔들릴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외국인 순매도는 한국주식의 매도라기보다는 세계 IT주식 매도의 일환이었다. 이것은 통계에 바로 나타난다. 지난해 외국인의 순매도 금액은 2조9천억원 정도였다. 그런데 이를 업종별로 살펴보면 전기전자 한 업종의 순매도가 4조원(이중 삼성전자 3조원) 정도였고,나머지 업종은 순매수이거나 소액의 순매도를 기록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은 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3월24일까지 외국인의 순매도 금액은 7천4백억원 규모였다. 이를 업종별로 살펴보면 전기전자 증권 은행업종이 각각 8천6백억원(이 중 삼성전자 6천4백억원),1천7백억원,1천4백억원 규모의 순매도를 보였을 뿐,대부분의 다른 업종은 순매수를 기록했다.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세계 시장이 아직은 IT경기 장기호황의 버블붕괴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삼성전자 등 한국시장의 주요 IT기업들도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새 정부의 경제정책과 최근에 불거진 SK글로벌 사태,카드채 부실문제 등이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심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들어 주가하락률이 선진국 증시나 다른 이머징마켓 증시보다 훨씬 더 컸고,최근의 세계증시 반등국면에서 우리 증시가 뒤처져 있는 것도 이런 영향 때문이다. 특히 은행 증권 등의 금융주 순매도는 최근의 사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번 일련의 사태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새로운 저평가 요인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더라도,작년 이후 제기된 한국 주식의 재평가(Relating)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한국 주식이 선진증시의 절반 수준 정도로 밖에 평가되지 않은 가장 큰 요인은 정부정책의 불안정성,기업 경영의 불투명성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문제가 단기간 내에 개선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한국증시를 재평가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시각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주가수준에서 우리 주식을 계속 내다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외국인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다. 국내투자자의 과민반응으로 주가가 지나치게 하락한 게 아닌가 하는 시각 때문이다. 오히려 일부 외국인 투자자는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리스크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들은 주가가 과거 또는 현재의 경영성과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장래의 경영성과, 즉 기대이익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그들은 냉정한 자세로 지금의 주가 수준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보다는 장래의 비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 또 단기적인 문제보다는 장기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구조적인 조정국면에 있는 세계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갈 것인가. 그 과정에서 IT경기는 언제쯤 회복국면에 들어설 것인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다. IT경기의 회복여부는 기업의 IT투자 재개 여부에 달려 있다. 최근에 IT투자가 부진한 것은 이라크 사태 등의 국제정세 불안요인도 있지만,IT산업 자체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IT산업 내에 새로운 엔진이 언제 나타날 것인가를 주시하고 있다. 또 SK문제 등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도 현재의 상황 그 자체보다는 이런 문제들이 어떤 방향으로 해결되어 갈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장은 영업실적이 부진하더라도 납득할만한 경영전략을 제시하고 꾸준히 선행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기업이라면 당장에 큰 이익을 올리고 있느냐,없느냐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현재의 상황은 현재의 주가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ch.kang@pcaass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