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된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루즈"는 신구세대에게 친숙한 팝의 리듬을 살린 뮤지컬영화였다.


올 아카데미상 13개부문 후보에 오른 롭 마샬 감독의 신작 "시카고"는 20세기초 미국을 풍미한 뮤지컬 재즈의 리듬에 바탕을 둔 뮤지컬영화다.


과거의 리듬과 박동이기 때문에 신세대들이 숨결을 밀착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역동적인 구성과 참신한 표현방식은 신구세대를 모두 끌어안는다.


춤과 노래가 여느 뮤지컬에서처럼 등장인물들간의 대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고 환상을 표현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은 새롭다.


"시카고"의 배경은 대공황으로 가는 길목인 1920년대의 퇴폐적인 도시 시카고다.


이곳에서 치정살인을 저지르고 수감된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와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이들을 이용해 유명해지려는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 등을 내세워 인간의 추한 욕망을 풍자하고 있다.


세 주인공은 돈과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에게는 살인도,재판도,기자회견도 욕망의 실현을 위한 쇼일 뿐이다.


그저 쇼의 주인공으로 관중(시민)들을 현란한 몸짓으로 현혹하면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관객들의 일회용 스타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화려하고 새로운 것을 좇는 쇼비즈니스에서 그들은 관객들로부터 한번 소비되고 버림받는 것이다.


추한 현실은 화려한 환상과 교차되어 나타난다.


죄수 록시는 어느새 무대의 주인공으로 변한다.


형사의 강렬한 플래시불빛은 무대조명으로 바뀌고,기자회견장에서 고함치는 기자들은 춤추는 무희가 된다.


특히 변호사의 언론플레이에 따라 기자들을 꼭두각시처럼 묘사한 기자회견 장면은 압권이다.


진실보다 거짓을 탁월하게 연기한 배우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재판정의 모습도 시대를 초월한 문명비판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대공황으로 가는 길목에서 먹고 마시고 속이면서 미래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술과 재즈는 최악의 결합입니다.몰락으로 이끄는 것이죠."


극중의 이 대사는 주제를 함축한 말이다.


이곳에는 도덕이란 터럭만큼도 없다.


등장인물들은 즉흥적인 재즈처럼 욕망을 향해 겁없이 뛰어드는 불나방들이다.


재즈의 선율은 욕정에 불타는 남녀들이 몸을 밀착시키기에 더없이 좋다.


1920년부터 14년간 실시된 금주령하의 시카고에서 재즈가 술을 끌어 들여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상황을 우화적으로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화면은 청색과 적색톤이 지배한다.


비탄과 절망,질투의 모습은 블루톤으로,(비록 거짓일지라도) 꿈과 희망 환희의 순간은 적색톤으로 채색돼 있다.


르네 젤위거는 "순진한 악녀"의 화신을 빚어냈다.


캐서린 제타 존스의 몫은 관능을 연기하는 것이지만 아기를 낳은 후 살집이 덜 빠져 다소 부담스럽다.


리차드 기어의 탭댄스,교도소장역의 퀸 라티파가 부른 "웬 유아굿투마마",르네젤위거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함께 부른 마지막 장면의 "아이 무브온" 등은 관객의 감성을 증폭시키는데 성공적이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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