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 대선공약의 하나다. 노 대통령은 "집권하면 신 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를 만들어 1년 내에 계획 및 입지 선정,2∼3년 내에 토지 매입을 마침으로써 임기 내에 착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와 건설교통부는 최근 작성한 보고서에서 인구 50여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1천5백만평 규모로 조성하는 데 정부 직접투자비 7조2천억원을 포함, 모두 37조2천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했다.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박정희 대통령 때도 있었다. 1977년 1월 서울시를 순시하는 자리에서 '서울에서 1시간 내지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인구 몇십만명 정도의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서울의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며 행정수도 이전계획을 지시했던 것이다. 이 작업은 청와대에 기획단을 설치해 추진했다. 당시 기획단은 세 가지의 기본방향을 세웠다. 첫째,행정수도는 국방력 증강 및 경제건설과 같은 국가중요사업에 지장이 없도록 한다. 둘째,인구 50만∼1백만명 규모로 하되 서울에서 고속도로나 전철로 2시간 내에 닿는 거리에 둔다. 셋째,서울은 경제 문화 역사 관광 등의 중심지로 계속 가꾸어 나간다. 기획단에서 마련한 계획은 △77∼78년 기본계획 수립 △79년부터 후보지를 선정하고 도시설계에 착수 △82년부터 건설과 이전을 시작하는 것으로 했다. 그 후 5개년 계획을 만들어 3개의 5개년, 즉 15년에 걸쳐 96년 말 완성하는 것으로 했다. 행정수도의 입지 선정작업은 물론 비밀리에 진행했다. 학계 연구기관 기술용역업체의 전문가를 총동원,결론을 내도록 했다. 행정수도는 국토의 중심성을 기본으로 해 일단 충청남북도를 상정하고 휴전선에서 70㎞,해안선에서 40㎞ 이상 떨어진 지점을 선정하도록 했다. 그 결과 1차 후보지역은 천원 진천 중원 공주 대평 부강 보은 논산 옥천 금산의 10개 지역이었고,2차엔 천원 장기 논산의 3개 지구로 압축됐다. 행정수도가 국토 중심부로 이전하면 전 국토는 현재 서울의 3백50㎞ 반경권에서 1백50㎞ 반경권내로 들어가게 되므로 불가피하게 국토의 재편성이 요구된다. 수도와 전국과의 도달 소요시간도 서울에서의 6시간에 비해 중심부로 이전땐 약 4시간이 되어 3분의 1이 단축될 수 있다. 따라서 행정수도가 국토의 중심이 되어 전국이 사통팔달하는 국토공간을 형성시킬 것이 필요했다. 이리하여 광역수도권은 수도의 핵부분이 될 반경 25㎞의 행정수도 구역,반경 50㎞의 행정수도 세력권,80㎞의 행정수도 영향권으로 구성하여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되,전국을 수도권 경기권 영동권 호남권 영남권으로 해 새로운 국토질서를 유지하게 계획했다. 국토의 동선 수송체계는 행정수도와 각 권역 및 산업기지를 연결하되,환상선과 방사선으로 해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이 되도록 했다. 이리하여 4개의 환상선과 8개의 환상선을 만드는 것이 기본 구상이었다. 이 같은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그러나 79년 10월26일 박 대통령의 서거로 빛도 보지 못한 채 역사 속에 묻히고 말았다. 필자는 행정수도 이전계획엔 찬성한다. 그러나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것이므로 국가 백년대계의 이념 하에 추진돼야 된다. 따라서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국토 재배치의 구상이 필요하다. 수도 이전계획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않은 방대한 사업이다. 그러므로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착수 전에 절대다수 국민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70년대 당시에 가장 신경을 썼던 것 중 하나가 서울시민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행정수도가 떠나고,미군이 후방으로 후퇴한다면 서울시민들의 불안감이 어떠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이미 3군 본부와 정부출연연구소 및 대학들이 속속 남쪽으로 이전하고 있다. 때문에 서울대책은 행정수도 이전의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대선공약에 밀려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장기계획 하에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현 정권에서 안되면 다음 정권에 물려준다는 자세로 해야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