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다.


1주일 뒤면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


강원 산간의 폭설소식에도 불구하고 남녘의 화신은 벌써 동백을 지나 매화로 이어지고 있다.


도심의 수목들도 움돋은 가지 가득한 새생명의 정기를 틔울 태세다.


벗어 놓은 외투 만큼 마음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계절.


그러나 왠지 개운찮다.


대구지하철 사고의 엄청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힘센 나라간의 으름장과 예상되는 쌈박질 여파로 떠안아야 할 경제적 어려움이 혹한의 겨울 만큼 어깨를 움츠러들게 한다.



꽃내음을 향한 먼길 나들이는 잠시 접어두고, 짧은 여행을 준비해 보자.


봄방학을 마치고 새학기를 맞는 아이들과의 교감을 위해 당일코스로 부담없는 당진으로 향한다.


당진여행의 1번지는 왜목마을.


지형이 왜가리 목처럼 바다쪽으로 뻗어 있는 왜목마을은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근 장고항의 노적봉(남근바위) 위로 솟는 2월과 11월의 일출이 특히 일품이다.


일출포인트는 마을 뒷산격인 석문산(79m)과 마을 안쪽의 길게 뻗은 방파제 끝부분이다.


이곳의 일출은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인게 특징.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기둥 같은 동해안 일출과는 달리 수줍은 듯 떠오르는 모습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조용하게 떠 있는 고깃배들도 해맞이의 묘미를 더해준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2시간 길이어서 연인끼리 또는 가족과 함께 하는 해맞이포인트로 1백점짜리다.


단 일기를 살펴야 한다.


해맞이를 할 수 있는 날이 많다고는 하지만 해무가 끼면 별무소용.


저녁나절 비가 오고 난 뒤 개인 날 일찍 서두르는게 좋겠다.


다음 코스는 봉화산 기슭의 안국사지.


길을 찾아 들어가기가 좀 어려운 이곳은 고려시대의 사찰 터.


여느 사찰에서와 같은 당우가 남아 있지 않지만 석불입상(보물 100호) 3점과 석탑(보물 101호)을 볼 수 있다.


호리호리한 몸집에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는 석불입상은 충청지방민의 여유가 넘친다.


솔뫼성지로 달려간다.


천주교 신자라면 건너뛸수 없는 곳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란 의미의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태어나 7세 때까지 살던 곳.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김 신부의 동상, 순교 1백주년 기념비, 피정의 집 등으로 잘 가꿔져 있어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당진에서는 일제치하의 저항시인이며 소설가인 심훈의 체취를 느낄수 있다.


한진나루 반대편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필경사가 그곳이다.


필경사는 심훈이 직접 설계해 지은 집.


이 집에서 주인공 채영신과 박동혁의 농촌계몽운동 이야기를 다룬 소설 '상록수'(1935년)를 썼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상록수문화관이 있다.


짜임새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심훈의 문학과 발자취를 일람할수 있게끔 해놓았다.


문화관 앞에는 지난 96년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시비가 있다.


시비에는 '그날이 오면'이란 그의 시가 새겨져 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1연)


오늘, 심훈이 살아 있다면 그가 '머리가 깨져도 기쁘게' 맞을 '그날'은 바로 '민족통일의 날'이 아닐까.


당진나들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서해대교에서 10분거리인 삽교호 함상공원에 들른다.


동양 최초의 군함테마파크인 이 공원에는 또하나의 국토, 바다를 지키던 우리의 전투함 2척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전투함 내부는 우리 해군과 해병문화의 모든 것을 체험할수 있도록 꾸며져 특히 남자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수 있다.



당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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