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전국이 충격과 슬픔의 도가니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성수대교 붕괴,삼풍백화점 붕괴 등 많은 인명피해를 동반한 대형사고들이 반복되고 있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질타와 재발방지 약속이 있었으나 얼마 후면 다시 발생한 비극 앞에 땅을 치곤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러한 슬픔을 계속 당해야 하는가? 국제적 경영컨설턴트 스티븐 코비에 의하면 △중요하고 급한 일 △중요하고 급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 않고 급한 일 △중요하지 않고 급하지 않은 일이 있다. 그런데 사회나 조직의 기본은 중요하고 급하지 않은 일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다. 안전문제 환경문제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는 먹고 살기도 힘들던 나라에서 국민소득 1만달러,월드컵 개최국,일류상품 수출국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그러나 성장 우선주의의 폐해는 안전과 환경 등 중요하고 급하지 않은 일을 간과하게 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가장 시급한 것은 국가 시스템의 혁신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명확한 기준,프로세스를 확립해야 한다. 이번 사고도 애초에 기준,프로세스가 불완전한 것이 문제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최소한의 품질요구만 맞추고 안전은 도외시했다. 이제는 올바른 기준을 확립하고,철저한 품질검증에 의거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13세기 팔만대장경은 전쟁 상황에서 제작되었으나,완성도나 보존상태 측면에서 세계 최상의 수준이다. 이는 나무의 선정에서부터 모든 작업과정에 엄격한 기준과 프로세스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기준과 프로세스는 곧 품질을 보증해 주는 신뢰의 척도가 된다. 지금 많은 기업들이 6시그마 경영품질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기업 프로세스를 6시그마 수준으로 향상시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혁신활동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가 프로세스는 어떠한가. 이번 사고는 우리 나라의 프로세스 수준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국가 프로세스 혁신활동을 시작할 때이다. 팔만대장경을 제작한 조상들의 정신을 되살려 국가 시스템의 품질 향상을 이루어내야 하겠다. 다음으로 기술자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기술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가슴 깊이 반성한다. 열차의 설계와 제작은 기술자의 몫이다. 비록 규정이 불완전했더라도 기술전문가들은 안전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기술인 윤리의식이 있었다면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 일본 기술자교육인정기구에서는 프로기술자의 첫째 요건을 윤리의식을 꼽고 있다. 반면 우리 기술자들은 어려서부터 성장 위주의 사고방식을 체득하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비극으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와 같은 기성세대는 후진국형 기술자일 수 밖에 없더라도 차세대 기술인재들은 선진국형 기술자로 키워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윤리의식,사회적 책임감이 함양된 프로기술인의 양성을 서둘러 선진국형 시스템 개혁의 불씨를 당겨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선진시민정신이 필요하다. 이는 △원칙을 중시하고 △질서를 지키며 △공동체를 위하고 △상호 신뢰하는 정신이다.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환경을 추구하고,원칙대로 관리·점검·훈련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우리는 소득 1만달러 시대에 걸맞은 의식수준을 갖고 있는가? 아직도 70∼80년대,소득 2천∼3천달러 시대 의식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경제성장을 달성한 것처럼 의식수준도 향상돼야 한다. 이번 대구 지하철 화재는 국가시스템,기술인 윤리,선진시민정신의 세가지가 모두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다.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확립되어 있었다면 이같이 큰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된다. 세가지 요소의 근본 개혁을 통해 반복되는 비극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선진사회로 도약해야 하겠다. 새로 출발하는 정부가 앞장서서 앞으로 5년 동안 전국민의 참여를 통해 선진국형 사회의 기틀을 확립하는 막중한 역할을 다해 줄 것을 기대한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