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주재한 어떤 외국 언론인은 한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힘을 가진 사람은 힘으로 지시하고 힘이 없는 사람은 무조건 복종하는 봉건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해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 힘을 못 쓴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고위직에 내정된 인사가 "주류나 기존의 엘리트 그룹을 끌어들일 경우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재벌 정치권 관료집단 일부지식인 언론 등에 대해 각각 다른 전략적 대응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개혁성향 장관을 대거 발탁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정면돌파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 일할 사람들의 의지를 볼 수 있어 기대를 해본다. 예전에 '참신'을 찾는다고 '아니면 말고'로 살던 사람을 썼다가 얼마 못가 갈아 치우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에 이번에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장기판에 훈수는 쉽지만 자기가 두면 어려운 법이다. 경영학 박사가 기업을 맡으면 이익이 나고,정치학 박사가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 된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지식과 노하우는 다르고 자문과 집행이 서로 다르니 세상 일이 어려운 게 아닌가. 일본에서는 장어요리사가 되는데 십여년의 수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작은 일에도 나름대로의 수련과 노하우가 필요하니 나랏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언젠가 참신하고 개혁성이 강해 정부요직에 중용됐던 교수 출신 친구에게 중앙부처 엘리트 관료들은 바깥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사명감이 강하고,청렴하며,그 분야 최고 수준의 전문가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뜻을 펴지도 못하고 얼마 못가 물러나고 말았다. 엘리트 관료들은 어려운 경쟁을 통해 출발했고 경륜과 노하우를 쌓은 검증받은 사람들이다. 일을 하기 때문에 실패도 있고 비판도 받으며 '아니면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니면 말고' 사람들의 비판에 할말이 있어도 말이 없다. '실세'가 개입된 부정대출도 관치금융으로 비판받고,정치권의 정책실패도 '개혁성'부족으로 치부돼 '관'이 매도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까지 개혁의 실패는 관료집단의 저항보다 개혁세력 자체의 부패와 모순,민심이반을 견디지 못하는 정치적 표퓰리즘이 더 문제였던 게 아니었나 한다. 무조건의 복종이 문제였지 저항이 문제된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관료들의 문제제기를 저항으로 받아들이면 그들의 설 땅은 없어지고 복지부동(伏地不動)이 될 수밖에 없다. 무능하고 부패하거나 무사안일에 젖은 관료도 있지만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지 관료들은 개혁성이 부족한 기득권 세력이라고 일반화할 수가 있을까. 오래전 같이 일하던 과장의 동기가 '참신'을 이유로 장관 하마평에 올랐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대학에 같이 시험쳐서 떨어진 후 미국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와 관변을 오가더니 장관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고시에 합격하고 미국 가서 박사도 따고 열심히 일했는데 국장도 못하니 살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학이나 고시가 바로 능력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료들의 프로페셔널리즘이 너무 경시되는 게 아닌가 생각됐다. 그래서 학문에 몰두하기보다 관변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너도 나도 정치권에 줄서기를 하지만 관료들은 정치적 중립과 서열에 묶여 끈도 제대로 달지 못한다. 마상(馬上)에서 천하는 얻을 수 있어도 민심은 지상(地上)에 내려야 얻을 수 있고,정권을 잡는 데는 뜨거운 가슴의 동지가 필요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데도 차가운 머리의 인재가 필요하다고 한다. 관료집단이 개혁의 동참세력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 되어서는 개혁의 성공이 어렵다고 한다. 뜨거운 가슴에 냉철한 머리,참신에 경륜,개혁성에 안정성이 합쳐진다면 더 좋은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다. 발표된 청와대 비서진에 관료들은 보이지 않는다. 공직의 경험이 전과(前科)같이 폄하당하는 것 같아 관료들이 측은하게 생각된다. 그들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포로'같이 우왕좌왕하고,'생명 있는 도구'로 이용되고서 '기득권세력'으로 치부되는데도 말이 없다.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