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재벌개혁 추진을 천명하고 나선데 이어 재계의 전위대라고 할 수 있는 자유기업원이 `정책제안'을 통해 재벌규제 폐지를 주장함에 따라 차기정부와 재계가 이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노 당선자는 지난 3일 대통령직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재계가 재벌개혁 정책을 흔들고 있다"며 정면돌파 의지를 밝혔으며 앞서 임채정 인수위 위원장도 표준협회조찬 강연회 등에서 집단소송제 등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말해 강공을 예고했었다. 재계를 대변하는 전경련 등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출자총액제한 반대, 재벌규제 개혁 등을 주장하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새정부, 재벌개혁 의지 '단호' = 노 당선자 등이 재벌개혁을 거듭 강조하고 나선 것은 재계의 반발이 확산되는 것에 쐐기를 박고 출자총액 제한제도, 집단소송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등 이른바 3대 재벌개혁 과제 추진을 기정사실화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는 전경련이 지난달 28일 이사회에서 각종 재벌개혁 과제들에 대해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조목조목 반대하는 등 대선 이후 재계가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재벌정책에 완강하게 반발하면서 재벌개혁이 차기정부 개혁정책의 성패를 가름하는 시험대로 떠오른데 따른 반작용의 성격이 짙다고 재계 관계자가 5일 전했다. 실제로 인수위 일각에서는 재계에 이어 다른 분야에서도 새 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한 반대와 저항이 확산되면 개혁추진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인식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 당선자가 오는 12-14일 열리는 전경련 세미나에 참석하겠다고 말한 것도 재계를 상대로 직접 재벌 개혁의지를 밝히고 정면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노 당선자측은 재벌개혁은 경제에 충격을 미치지 않도록 장기.점진.자율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온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각종 개혁정책을 구체화하면서 재계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재벌개혁 반대속 '긴장' = 전경련 등 재계는 재벌개혁에 관한한 일관된 반대의사를 밝혀왔다. 원론적인 면에서는 차기정부의 경제운용에 협력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집단소송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등 구체적인 각론에서는 지속적으로 반대입장을 견지해 왔다. 자유기업원이 오는 10일 공표할 `정책과제'를 통해서 3대 재벌개혁 과제 뿐 아니라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공정거래 정책 등에 대해서도 반대목소리를 높인 것도 재계의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유기업원은 전경련이 모태가 돼 설립됐을 뿐 아니라 출자금중 일부를 전경련이 부담하는 등 자금과 운영면에서 전경련과의 연계가 남아있는 단체다. 그러나 재계는 노 당선자측이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를 표명함에 따라 개혁속도와 강도가 높아질 것을 내심 걱정하고 있다. 특히 집단소송제 등 재벌정책이 구체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정부와 재계간의 마찰이 고조되면서 기업의 행동반경에 크게 제약받고 시민단체 등의 기업에 대한 압박도 가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차기정부에서 재벌개혁 정책은 정도가 문제였지 일정수준까지는 추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면서 "다만 노 당선자측이 재벌을 개혁저항 세력으로 인식하는 것은 기업이나 국민경제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신중한 개혁추진을 주문했다. ◆전경련 개혁론도 '솔솔' = 전경련에 이어 전경련이 모태가 된 자유기업원이 재벌정책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데 따른 `역풍'이 우려되면서 전경련의 성격이나 역할이 재고돼야 한다는 의견이 재계 일각에서 일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경련이 재계의 입장을 대변, 재벌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 재계와 차기정부간 갈등을 부추기는 쪽으로만 나가는 것은 재계나 경제를 위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 경제단체 통합론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김효석 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에서도 전경련 개혁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도 전경련의 앞날에 적지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최근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경련 등을 지금까지 끌고온 책임자들은 좀 심하게 얘기하면 극우적인 생각, 친기업적인 생각을 가졌다"면서 "우리사회는 이제 균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젠 좀 젊으신 분들, 새로운 개방적 사고를 가진 분들이 맡아서 같이 일을 해나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손길승 SK회장이 차기 전경련회장직을 수락할지 여부와 함께 지난 97년부터 상근 부회장을 맡아오면서 요즘 차기정부와의 갈등을 지나치게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손병두씨의 거취가 주목받고 있다. 이와 함께 전경련 차기 회장 추대과정에서도 유력 기업 오너들이 재벌개혁을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을 우려, 극구 고사함에 따라 전문경영인 출신이 추대됐다는 점도 전경련의 위상과 관련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문경영인 출신 회장이 제역할을 하려면 오너 회장들의 뒷받침과 지원이 필수적이며 만일 오너 회장들이 전경련의 활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경우 전경련의 위상이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신삼호기자 ssh@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