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포함한 태평양 연안 43개국을 작전구역으로 삼고 있는 미국 태평양사령부가 미 국방부에 전력 증강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배경을 둘러싼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이 사실을 최초 보도한 미 CBS 방송은 "태평양사의 이번 요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핵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더 이상 외교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신호(Clear Sign)"라고 주장했다. 물론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아직 이 요청을 승인하지 않았고, 군사행동이 임박한 것도 아니다"라는 소식통들의 얘기를 붙이긴 했지만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 가능성 쪽에 무게를 둔 섬뜩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CBS 방송에 뒤따른 CNN 등 미국의 다른 언론 보도로 미뤄 CBS측은 태평양사의 전력 증강 요청을 지나치게 북핵문제와만 연결시키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CNN은 1일 "태평양사 요청에는 F-15 전투기 8대를 일본에 증파하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며 "요코스카항을 모항으로 기동하는 항공모함 키티호크호가 자리를 비울때 주일미군의 공군력을 증강시키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CNN은 이어 "미국이 이라크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 전력 증강이 검토돼 왔고, 또 하와이에서 훈련중인 항모 칼 빈슨으로 키티호크의 임무를 대체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 등도 같은 날 "북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은 불변"이라는 미 관리들의 말을 전하면서 대체적으로 태평양사의 이번 요청이 이라크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비한 대북 억지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보도는 태평양사의 전력 증강 요청이 이라크전에 동원될 것으로 알려진 키티호크호를 빼내는 데 따른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코소보 사태와 아프간 전쟁 때 키티호크호를 동원하면서 대체전력을 배치한 전례가 있다"며 "태평양사의 이번 전력 증강 계획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군사 소식통은 "태평양사의 요청을 `북핵문제를 더 이상 외교적으로만 다루지 않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명백한 신호'라고 평가한 CBS 방송의 보도는 미 행정부관리들의 종전 발언 등을 놓고 볼 때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미 행정부가 정말로 북한에 그런 메시지를 보낼 의사가 있었다면 태평양사가 전력 증강을 미 국방부에 요청하는 형식이 아니라 미 국방부가 능동적으로 전력을 추가 배치하는 형식을 취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작전구역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령부'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만큼 최대 전력을 보유한 태평양사는 미국의 9개 통합군사령부중 한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태평양사는 주한미군을 예하 사령부로 두고 있고, 한.미 양국의 증원 병력 전개 계획에 따라 한반도에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군병력 투입 임무를 주도하게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