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5일 오후의 '인터넷 대란'은 나에게도 심각한 경험으로 남게 됐다. 오후 내내 인터넷 접속이 안돼 '내 컴퓨터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다행히 그날 보낼 원고나,은행일 같은 시급한 일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급한 인터넷 작업을 앞두고 그런 일이 벌어졌더라면 어쩔 뻔 했나? 일요일 아침 다시 멀쩡해진 인터넷으로 세상을 돌아다녀 보니,일본신문에도,미국신문에도 세계의 인터넷 혼란이 보도됐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에서 시작된 인터넷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졌다는 단정적인 말로 기사를 시작하고 있어서 특이해 보였다. 그 기사만으로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미국에서는 이번 사고가 미국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번져 나갔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일본 어느 신문에서는 한국의 인터넷 보급이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한국의 피해가 가장 심할 것으로 암시하기도 했다. 한국의 인터넷 보급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에 힘입어 1998년 1만명 정도였던 것이,작년 10월 1천만명을 돌파해 인구비례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그 신문은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 최첨단의 정보화 사회로 발돋움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가 전체 인구의 58%인 2천5백65만명이고,초고속 인터넷 가입 가구가 1천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렇게 IT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우리나라가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때문에 사이버 테러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사회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아직 이번 사태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테러인지,아니면 우연한 사고인지 분명치 않지만,현대 기술사회의 가장 위험한 측면은 바로 그 기술의 '공격에 대한 취약성'에 있다. 고도로 발달되고 전 지구가 연결된 그런 기술일수록,아주 간단한 공격으로 마비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 갈등이 증폭돼 그런 테러의 가능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뉴욕 무역센터 테러도 그런 예의 하나라 할 수 있지만,핵무기나 화학무기 등을 둘러싼 갈등 역시 비슷한 경우로 꼽을 수도 있다. 이런 기술에 대한,또는 기술에 의한 테러로 더욱 상징성이 높은 경우로는 '유나바머'사건을 들 수 있다. 1978년부터 17년 동안 미국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소포폭탄 사건은 3명 살해와 23명의 부상 정도였지만,그 충격은 심상한 것이 아니다. '유나바머'란 별명의 디오도어 카진스키는 16살에 하버드대에 들어가 수학을 공부하고 미시간에서 박사학위를 얻었고,그 자격으로 1968년 버클리대의 수학교수가 된 수재였다. 신문에 공개된 그의 '유나바머 선언문:산업사회와 그 미래'는 현대 지식인의 필독 문헌이 됐을 정도다. 1996년에 체포된 '유나바머' 카진스키는 지금 4회 종신형+30년이라는 이상한 징역형을 살고 있지만,제2의 '유나바머'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어쩌면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한국 PC방의 수많은 젊은 수재들 가운데에도 언젠가 '유나바머'해커가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카진스키의 선언문에는 '자연을 파괴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박탈하는 기술로부터의 해방'이 전제돼 있다. 그리고 이 현대문명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혁명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를 전복하는 그런 혁명이 아니라 기술을 제거하는 혁명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억압받는 소수민족의 저항,차별 받는 사회 계층의 반발,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개인들의 울분이 더욱 더 높아지고 많아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균형을 잃은 사람이 늘어가는 세상이다. 현대기술의 '공격에 대한 취약성'에 대해 이런 모든 요소가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갑자기 전기가 끊겼을 경우나 물이 안 나올 때,그리고 불이 났을 위급한 상황에만 대비하고 앉아 있을 한가한(?) 시절은 지났다. 국가와 군의 모든 조직과 기구는 물론,민간 차원에서도 사이버 테러에 철저히 대비하고,또 연습해 둘 필요가 있게 됐다. 다음번 민방위 연습 때는 사이버 테러 대비 훈련을 해봄직 하지 않을까? 또 인터넷 대란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모두가 생각할 때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