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있어 '개혁'은 정치적 정체성과 같은 것이다. 스스로를 '개혁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이를 위한 역할분담으로 고건씨를 '안정 총리'로 내세웠다. 개혁이 당위이다. 하지만 개혁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개혁피로감도 있고 개혁후유증도 있다. 또 개혁의 대상과 개혁의 주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접근할 때 적지않은 반발이 초래됐던 것도 그간의 경험이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모두가 개혁의 주체가 되고 또 모두가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한다. 신정부의 개혁 아젠다는 많지만,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정치개혁이며 권력 부서의 개혁이다. DJ정부 하에서 많은 경제·사회개혁이 시도돼 개혁피로감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데 정치개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개혁결핍증이라고 할 만하다. 국회의석 26석을 줄인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이 정치개혁에 목말라 하고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집권 세력이 개혁 주도세력으로 자부하고 있지만,정치는 4류로 경제는 2류로 평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4류가 2류를 개혁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그럼에도 2류 기업의 문제점을 고치려고 메스를 잡는다면 "의사여,그대의 병부터 고치시오"라는 요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고비용 정치와 권력집중,자의적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 부서는 그대로 두고,교육 의료 보험 사회 경제분야에 대해 개혁의 당위성을 외친다면,'자신의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보는 위선에 불과하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타율적 개혁보다 자율적 개혁이 개혁의 본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병을 고치려 할 때도 의사의 처방보다,병을 낫겠다는 환자의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정부가 자신의 영역에 대한 개혁보다 경제 등 남의 영역을 개혁한다고 할 때 타율적 개혁의 성격을 피할 수 없다. 기업 스스로 자율적 개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즉 산파의 역할이 정부의 역할이지 '배놓아라,감놓아라' 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개혁,권력부서의 개혁은 다르다. 그것은 정부의 소관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노 당선자의 약속은 일단 기대를 모으게 한다. 토론공화국,책임총리제의 도입,야당당사의 방문,인위적 정계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치개혁에서 '시작이 반'이라는 준칙이 들어맞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런 시도들은 약속어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YS나 DJ정부도 출범 초기에는 나름대로 웅대한 개혁 비전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도덕적 해이가 찾아왔고,권력의 편안함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개혁을 단순히 사람 바꾸기로 생각하고 수많은 단명 장관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즉 정치개혁이 '인치'정도로 변질됐다. 정부개혁의 핵심은 정부부처의 개편보다 공정한 인사다. 정부부처 개편의 효과는 불확실성의 요소가 있지만,공정한 인사의 개혁은 그 효과가 매우 뚜렷하다. 인사문제는 정부의 정치적 의지의 진솔성과 진지함을 국민 누구도 쉽게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 당선자는 인사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 인터넷 추천도 받고 또 여러 단계의 검증절차를 거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인터넷 추천이나 정교한 검증절차는 공정한 인사의 형식은 될지언정,내용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노 당선자의 정치적 의지다. 어려웠을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중용할 때,그것은 새로운 가신그룹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그것이 정치개혁을 가로막았던 온정주의다. 유능하면서도 자신에 대해 거침없이 쓴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삼고초려하는 마음으로 쓰겠다고 하는 의지가 요구된다. 물론 측근에서는 옥석을 가리는 것처럼 '내편 네편'을 엄정하게 갈라써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을 법도 하다. 그렇지만 진정한 인사개혁이란 선거 때에 생겼던 '내편과 네편'에 대한 구분을 잊고,혹은 내편만을 가려써야 한다는 유혹을 이기고,쓴말과 바른말을 할 수 있는 능력자를 쓸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