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과 월드컴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기업관련 스캔들이 얼룩졌던 작년은 미국식 기업지배구조와 회계기준이 실패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해로 기억될 것이다. 신문 지상을 도배하다 시피했던 여러 사건들을 평가하면서 반드시 고려돼야 할 것은 바로 이를 보도했던 언론들도 잘못 대응했다는 점이다. 경제관련 미디어들은 1990년대 후반 폭발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CNBC는 미국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케이블채널 전문 방송국이 됐으며 새로운 잡지들과 '비즈니스 2.0'이나 '스트리트닷컴'등 웹사이트도 번성했다. 이들은 갑작스레 부상한 인터넷 경제의 신비를 벗겨 보겠다며 관련 뉴스를 앞다퉈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 같이 미국 경제의 결점을 폭로하는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하진 못했다. 신생 잡지들과 웹사이트들은 '수동적인 치어리더(incurious cheerleader)'와 같았다. 대표이사들과 기업들의 혁신적 발상을 치켜세우기만 했을뿐 기업들의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엔론'이라는 검색어를 쳐보면 2000년 이전에는 '시장 혁신'이라는 칭찬 기사만 있을뿐 비판조로 작성된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조류를 만든다고 설교했지만 그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와 기술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실재하는지 여부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았다. 정보 습득에 있어서도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중시하는 증권사들에 너무 의존했다. 본인은 이런 종류의 잘못을 지난 99년 초기에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대형 인터넷 음반판매 회사 2곳이 합병을 해 이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는데 취재를 위해 접촉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새 회사가 유망하다는 논평을 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그 합병 회사가 장차 어려움에 닥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존이 온라인 음반판매 분야에서 1위로 올라섰는데도 그 애널리스트는 합병회사의 경영진이 실력 있다는 등의 미사여구를 동원해 회사 주식을 강력히 추천했던 것이다. 이후 이 증권사는 보유했던 합병 회사의 주식을 전부 내다팔았다. 또 다른 문제는 미디어 기업 스스로가 인터넷 회사들과 너무 깊이 관련돼 있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일했던 '인더스트리 스탠더드'는 사풍이 취재 대상인 인터넷 기업들과 너무도 흡사했다. 이런 성향은 결국 기자들의 눈을 가렸다. 다른 한편에선 언론사 경영진들이 인터넷 회사의 경영진들과 어울려 컨퍼런스를 가지며,기업들로부터 광고를 약속 받았던 일이 다반사였다. 한 업종이 와해되는 것을 두고 미디어만 전적으로 탓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일 수도 있다. 특정 기업이 투자자와 관계 당국을 오도하고 회계사가 잘못된 회계보고서에 서명까지 한 상태에서 마감시간에 쫓기는 기자들이 진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때때로 언론들은 과감히 인터넷 기업의 허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은 증권사와 홍보회사들로부터의 과장된 정보를 차단할 능력은 없었다. 미디어는 전통적 법칙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이 있다는 주장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증권거래위원회(SEC) 같은 정부 당국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리=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 -------------------------------------------------------------- ◇이 글은 타임지 유럽 비즈니스 담당인 제임스 레드배터 기자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1월 3일자에 기고한 'The Business press let itself down'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