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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여록] 지멘스의 교육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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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리히 폰 피어러 지멘스 사장은 경영실적을 자랑하기보다는 앞날을 내다보는 지멘스의 교육투자를 소개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는 "지멘스는 지난해 4천명을 감원했지만 7백명의 실습교육생을 새로 받았고 여전히 직원들에게 외국어와 프리젠테이션 스킬 같은 교육을 열성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시장 경제'를 따르는 독일 회사에 있어 교육은 이윤 추구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지멘스 15개 사업부중 하나인 전력부문은 10년제 실업학교를 갓 졸업한 생산직 사원들에게 3년여에 걸쳐 영어와 기능을 가르친다. 이 사업부는 9백여명의 생산직중 80%가 영어회화와 특수기능을 구사할 수 있는 고급인력이다. 지멘스의 교육은 전세계인이 대상이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5개의 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중 하나인 'SSP'는 각국 지사가 뽑아 보낸 2백여명의 외국인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6개월에서 1년간 월급을 주면서 과제를 수행케 한다. 이들이 받는 월급중 정부 지원은 10%뿐이고 취업 의무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 35명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에 다녀왔거나 체류중이다. 이같은 교육투자가 가져오는 효과는 지멘스 발전부문에서 32년째 근무하는 요르그 푀커 부사장 가족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이 가족은 4대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14세에,아버지는 19세부터 생산직으로 출발했다. 푀커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회사를 '우리 집',임직원은 '우리'라고 불렀고 내 장남도 지멘스에 입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는 회사에서 많은 것을 교육받고 생업을 보장받은 대신 회사가 요구하는 높은 충성심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지멘스의 지난 회계연도 순익률은 3%에 그쳐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 회사 직원들은 자신의 발전을 책임져주는 회사에 대해 높은 충성심을 갖고 있고 회사도 이를 토대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멘스의 실적보고서 표지에는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지속적인 성공'이라고 씌어 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올해로 1백55년째 건실하게 버티고 있다. 뮌헨= 정지영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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