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목민입니다. 메모리는 빨리 가서 제품을 풀고 다시 떠나야 하거든요."


메모리반도체를 나노(nm.회로선폭이 10억분의 1m) 기술 시대로 진입시킨 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은 '유목민'을 자처한다.


초원을 누비며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했던 몽골제국의 야망을 떠올리게 한다.


PC 이외의 새로운 시장이 나타나 메모리가 급성장할 것이라는 '메모리 신성장론'(일명 '황(黃)의 법칙')에는 황 사장의 야망이 숨어 있다.


그는 '황의 법칙'을 이미 실전에 접목시켜 플레이스테이션2, X박스 등 게임기와 노키아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등 고부가가치 시장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노키아 같은 휴대폰 회사들은 PDA(개인정보단말기)는 물론 캠코더 기능까지 갖춘 휴대폰을 만들겠다며 메모리개발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수 기가(10억)바이트의 메모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지요."


황 사장은 신시장 개척을 통해 지난해 하반기 적자에서 헤매던 메모리사업부를 다시 삼성전자의 '캐시카우(cash cow)' 자리로 올려 놓았다.


경쟁업체인 마이크론이 연속적자에 허덕이고 일본업체들은 메모리 사업에서 속속 손을 떼고 있지만 삼성은 올해 메모리사업에서 2조원 이상의 이익을 낼 전망이다.


황 사장은 앞으로 수요가 급증할 품목으로 플래시메모리를 꼽고 이 제품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그 결과가 최근 세계 최초로 내놓은 2기가 NAND플래시메모리다.


그는 반도체연구소장시절부터 플래시 개발팀과 기획팀을 불러 샘플을 놓고 분석하는 등 공을 들여 왔다.


주력제품인 D램처럼 연구팀을 복수로 만들어 놓고 경쟁과 협력을 유도했다.


해외법인에도 정보수집 특명을 내려놓고 출장때마다 챙겼다.


지난해 외국의 한 업체가 플래시메모리 합작법인 설립을 제의해 왔지만 황 사장은 "삼성전자 혼자서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무산시켰다.


"평소엔 부드럽지만 플래시메모리사업을 밀어부칠때 만큼은 저돌적"이라고 직원들은 말한다.


2백56메가 D램 세계최초 개발(1994년)의 주역인 황 사장은 반도체연구소장을 역임하는 등 사업부를 맡기 전까진 연구개발분야에만 줄곧 근무했다.


그렇지만 연구자체에만 매달리진 않았다.


"반도체는 기술이 있어야 시장을 창출할 수 있지만 기술중엔 사라지는 것도 많습니다. 상품화가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고 상품화시키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황 사장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시장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힘을 기울인다.


해외출장만도 연간 1백일에 이른다.


이렇게 수집한 시장동향은 수시로 갖는 직원들과의 모임을 통해 전달한다.


"R&D를 맡았을 때는 기술이 세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나 의심했었는데 사업부를 맡아 보니 이제 세상이 보입니다."


황 사장은 의대를 가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1972년 서울공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반도체에 인생을 걸기로 맘먹은 것은 대학 2학년때 읽은 책 한권 때문.


"미국 반도체회사 인텔의 창업자 앤디 그로브가 지은 '반도체의 물리학'을 수 백 번은 읽었어요. 책이 닳으면 또 사서 읽고 해서 같은 책을 세 권이나 샀습니다."


"세계를 휩쓸던 일본반도체업체들을 보니 한국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삼성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였다"는 황 사장은 "한 번도 반도체를 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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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1953년생

<> 부산고, 서울대 전기공학과,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전자공학박사

<> 85년 미국 스탠퍼드대 책임연구원, 인텔사 자문역

<> 89년 삼성전자 16메가D램 소자개발팀장

<> 92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이사

<> 94년 세계최초 256메가D램 개발성공,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차세대메모리개발총괄 상무

<> 98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장(전무)

<>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대표이사 부사장

<> 2001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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