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성은 악(惡)이어서 그것을 방임하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난다고 보고,외부의 가르침에 의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이다. 기업을 규제하는 것도 기업의 본성은 악이라는 인식에 근거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 본성이 악이든 선(善)이든 기업은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모든 나라에서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겠다고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주한 미 상공회의소의 '기업환경 조사보고서'는 서울의 기업환경이 아시아 경쟁도시 중 최하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일부 특정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바 있다. 이런 점은 한국의 기업환경이 열악하다는 걸 말해준다. 월드컵 4강 신화를 경제에도 재현하자고 한다. 중요한 건 기업을 뛰게 하는 것이다. 기업환경은 어떤가. 첫째,공정거래위원회의 6대그룹 내부거래조사를 보자.지난 7월말 공정위는 6대그룹 계열사간의 내부거래에 관련된 자료를 제출토록 요구하고 서면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간의 내부거래가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을 조사이유로 내세웠다. 내부거래 비중은 4대 기업집단의 경우 39.5%(2000년)에서 37.6%(2001년)로,12대 기업집단 전체로는 35.3%에서 32.5%로 감소했다. 공정위의 판단으로는 감소율이 '만족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라야 만족할 수준인가. 내부거래는 부당거래가 아닌데도 그렇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를 두고 '재계 길들이기'라는 시각도 있다. 조사대상 기업은 범법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돼 해당기업의 이미지는 실추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일반 시장에서 구입하든, 그룹 내부의 기업에서 구입하든 그것은 기업의 자유다. 제대로 된 기업이면 코스트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공정위의 잣대로 잴 성질이 아니다. 우리 속담에 '외할머니 떡도 싸고 커야 사 먹는다'고 했다. 그게 시장경제다. 둘째,주5일 근무제를 보자.정부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재계도 노동계도 그 속내는 다르지만 정부안을 반대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통령 공약이라서 그런지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현장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면서 일하는 시간 줄이는 문제를 놓고 시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셋째, 출자총액제한제도 역시 기업의 발목을 붙잡는다. 이 제도는 30대 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들은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국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출자총액한도를 넘어선 기업들에 대해 보유주식 처분을 명령하고 한도초과 지분에 대해서는 주식의결권을 제한하는 등 제재조치를 내렸다. 이 제도는 IMF 직후 기업의 자율적 투자를 저해하고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이 우려된다고 해서 폐지됐다가 다시 부활됐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도 장기적으로 폐지해야 할 제도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제도 도입에는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에서 보듯 기업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시장이 효율적인 규제를 할 수 없었던 때에는 정부규제의 필요성이 있었다. 이제는 시대상황이 달라졌다. 투자를 장려하지는 못해도 기업의 손발을 묶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시장의 규율을 대신해서 기업의 행태를 바로 잡으려는 것은 무리다. 기업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경쟁자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분야에 어떻게 진출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성공도 실패도 그 기업의 몫이다. 근본적으로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축구선수에게 '너무 많이 뛰면 안된다' '동료선수에게 패스하면 안된다'고 한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일까. 기업을 마음껏 뛸 수 없게 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든다고 하면 이는 더 웃기는 일이다. 기업은 좋은 일을 하는 조직이라는 '기업 성선설(性善說)'을 믿을 수는 없는가. 기업에 재갈을 물리면서 뛰라고 할 수는 없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