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새벽 4시. 김억만(37) 차장은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고객 오 모씨(69)가 투병중이던 남편이 방금 별세했다는 부음을 전해왔다. 김 차장은 곧 병원으로 달려가 장례절차를 준비했다. 사무실로 돌아와선 오 씨 가족의 상속관련 서류를 챙긴 다음 인터넷을 통해 장례식장으로 보낼 조화(弔花)를 주문했다. 김 차장의 직업은 프라이빗 뱅커(PB). 하나은행 삼성역센터 소속이다. 오전 8시30분. 동료 PB들과의 회의시간이다. 김 차장은 오 씨 가족의 상속 문제를 주제로 올렸다. 상속 및 증여세 절세 방법을 함께 궁리했다. 그가 관리하고 있는 오 씨의 재산은 부동산을 포함,대략 1백억원 정도. 회의를 마친 김 차장은 회사를 나섰다. 오전 10시30분에 주요 고객이 될 수 있는 서 모씨(55)와 상담약속을 잡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서 씨가 일하고 있는 서울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서 씨는 최근 김 차장에게 1억원 정도의 자산관리를 요청해왔다. 김 차장은 채권 예금 등을 위주로 한 안정형 자산 포트폴리오를 짰다. 낮 12시. 오늘 점심은 고객 정 모씨(54)와 약속이 잡혀있다. 정씨는 지난 월드컵 기간중 김 차장에게 16강전 티켓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는데,김 차장은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어렵사리 4장을 구해줬다. 정 씨가 감사의 표시로 이날 점심을 사기로 한 것. 오후 2시. 약 80억원의 자산을 맡기고 있는 주부 최 모씨(39)와의 면담이 예정돼 있다. 최 씨는 장기 유학을 준비중인 자녀를 위해 언제 얼마나 환전을 하는 게 좋을 지 물어왔다. 최 씨는 또 북유럽 가족여행 상품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김 차장은 즉시 여행사를 통해 호텔 항공권 등을 예약했다. 오후 3시30분. 주식시황을 체크하고 주식관련 상품을 점검했다. 주식이 점차 오르리란 판단에 따라 안정성보다 수익성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비중을 다소 높일 것을 권했다. 오후 6시30분. 약 두 시간에 걸쳐 동료 PB들과 전략회의를 가졌다. 고객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수시로 재점검하기 위해서다. 업무를 마치면 8시를 넘기는 게 보통이다. 김 차장이 관리하는 고객 돈은 대략 2천4백억원 정도다. 웬만한 지점 4~5개의 수신규모와 맞먹는다. 고객이 2백명쯤 되니 고객당 평균 10억원 이상씩을 김 차장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하나은행의 지난 상반기 PB평가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김 차장은 PB의 첫 번째 요건으로 "윤리성"을 꼽는다. 자칫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고객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조건은 실력. 세무 주식 채권 부동산 등 그야말로 "슈퍼맨"이 돼야 한다. 김 차장은 투자상담사 금융자산관리사 AFPK 등 여러 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고객에게 도움이 된다면 비단 하나은행의 상품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도 고객의 신뢰를 얻는 데 필요하다고 김 차장은 귀띔했다. 글=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