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집주인의 전세가 인상요구로 세입자들의 고민이 심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5단지 20평형대 아파트에 사는 회사원 강모(38)씨. 현재 1억2천만원인 전세가를 1억7천만원으로 5천만원 더 올려 달라는 집주인의전화를 받고 직장인인 그는 한두푼도 아닌 1년치 월급을 넘는 수준의 목돈을 어떻게마련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송파구 가락동 미륭아파트 27평형에 사는 박모(40)씨 역시 전세가를 5천만원 올려달라는 청천벽력같은 통고를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받았다. "살맛이 안 난다"는 박씨는 "돈을 구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서 "최근 서울시동시분양에 청약한 아파트가 당첨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그나마 전세가가 월간 1%안팎 상승하는 상대적인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외환위기가 끝나고 집값과 함께 급등세를 보인 전세가의 최근 2년간 상승률이 누적돼 40%에 달하면서 고충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규정한 5%이내 인상률 제한 조항은 이미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 전세가 상승률 왜 큰가 = 외환위기 이후 급락했던 전세가는 집값과 함께 99년들어 다시 급등하기 시작, 그해말에는 외환위기 직전수준을 회복했다. 전세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상승했으며 올봄에도 한주에 1%씩 오르는 등급등세를 이어가다가 4월들어서 상대적인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전세가는 서민들이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랐다. 최근 2년간 아파트 전세가의 급등은 외환위기 이후 주택공급이 대폭 줄어들고서울의 경우 특히 대형 평형 분양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등 공급측면에서의 부족문제가 큰데다가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부동산114의 김희선 상무는 "당분간 월 1%안팎으로 움직이는 상대적인 안정세가예상되지만 이마저도 서민들에게는 굉장히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대책은 없나 = 세입자를 보호하는 대표적인 법률은 지난 81년 도입된 주택임대차보호법. 80년대초 전세가 대란이 일면서 집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세입자들을보호하기 위해 우선변제권, 2년 계약기간 보장 등을 규정, 어느정도 역할은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84년 개정을 통해 연간 인상 제한폭을 5%이내로 정한 증액청구의 기준에대한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단속 조항도 없는데다가 현실적으로 세입자가 이 조항을 들이밀면서 버티다가는당장 `방빼'라는 얘기를 들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초부터 사적인 계약을 법률로 규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의 김성식 연구원은 "사적인 계약을 단속하기도 어려운 것을 비롯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신 "획일적인 제도로 규제하기 보다 공급부문에서 임대주택을 늘리는 등수요와 공급을 통한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박사는 "심리적인 효과는 있는 조항"이라며 "현실에 맞게 인상 상한폭을 확대한뒤 자치단체별로 지역 현실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있게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뾰족한 대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경수현기자 ev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