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배타성은 뿌리가 깊다. 18세기말 유럽의 유명한 관상가 캐스파 라바터(Lavater)는 어떤 글에서 유대인의 특징이라는 매부리코(hawk nose)를 다음처럼 악덕의 표상으로 강조했다. "아래로 굽은 코는 결코 진실하거나, 진정으로 쾌활하거나, 고상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다. 그들(유대인)의 생각과 경향은 항상 땅을 향해 있다. 폐쇄적이며 차갑고 냉혹하며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없고, 때로 악의적.냉소적이며 성질이 괴팍하고, 또극도로 위선적이며 우울하다. 코 윗부분이 흰 사람은 주색에 잘 빠지곤 한다" 따라서 20세기초 아돌프 히틀러란 괴물이 등장해 광풍처럼 일으킨 유대인 집단학살은 어느 날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재앙이 아니라, 어쩌면 이러한 관상학적 전통까지 가미된 '예고된' 비극이라 할 수도 있다. 실제 나치 정권은 유대 '인종'(race)을 구분할 관상학적 여러 특징을 만들어 냈는데 이를 응용해 유대인을 가려내는 데 썼다. 흔히 얼굴이나 손금을 보고 그 사람의 운명을 점친다는 관상학이 때로 얼마나 폭력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일 수 있는지를 엿보게 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관상학을 더욱 그렇게 만든 것은 서구 사회에서 계몽주의의 대두에 따라 부쩍 강조된 '이성' 혹은 '과학'과 결합하게 되면서였다. 속성상 미신이라는 딱지를 떼기 힘든 관상학은 범죄인류학이나 진화론과 같은 '과학'과 화학결합을 이루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관상학이 인류역사에서 수행한 가장 중요한 기능이 '편가르기'라고 할 수 있다. 조금 거창한 용어를 빌린다면 '타자'(他者)를 만들어내는 구실을 했다. 쉽게 말해 관상학은 얼굴 등 신체부위의 특성을 고리로 어떤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을 '너'(너희)라고 설정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나'(우리)를 창출했다. 관상학은 바로 이러한 특성에서 억압성과 폭력성을 동반하게 된다. 서양 근대사에서 관상학을 곧 인종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관상학은 인종이나 계급을 구별하는 표지로 쓰일 때, 차별을 정당화시켜 주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 이러한 차별적 관상학은 서구에서 계몽주의 및 제국주의 물결이 휩쓸 때는 다른 문명권에 대한 유럽의 우월감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알고있는 '인종'이란 개념이 유럽 제국주의의 발명품이란 사실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편가르기'를 위한 관상학적 전통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그리스가 아닌 이방인 사회를 설정할 때 관상학이 동원된 것이다. 얼마전 「온천의 문화사」라는 다소 이색적인 주제로 서양사를 파고든 사학자 설혜심씨가 두번째로 던진 이번 책은 주제의 참신성과 분석력이 탁월한 문제작이다.한길사. 371쪽. 2만2천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