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炳鎰 < 이화여대 교수 >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산·관·학 공동연구회' 1차 회의가 지난주 서울에서 개최됐다. 연구회란 명칭을 띠고 있지만,한·일 FTA를 위한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시각이다. 1998년 11월 한·일 통상장관 회담시 양국간 FTA 추진에 관해 민간 차원의 공동연구를 시행키로 합의한 이후 공동연구회까지 오는데 4년의 세월이 걸렸다. 한·일 FTA는 단순한 경제적인 사건이 아니다. FTA는 오랜 역사를 두고 '멀고도 가까운 이웃'일 수밖에 없었던 한·일 양국의 경쟁과 협력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역사적인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칠레와의 FTA체결 추진이 암초에 걸린 상황에서 한국은 세계 10대 통상국가 가운데 아무런 FTA를 가지고 있지 못한 국가다. 그동안 안정적인 다자체제의 강력한 후견인이었던 미국이 국내 보호주의세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과 미국경제의 침체라는 이중 악재는,한국이 현 시점에서 FTA를 명분과 실리를 모두 충족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현명하게 접근해야 할 시급성을 일깨우고 있다. 양국이 보완적인 산업구조를 가진 경우 FTA로 인한 피해가 적기 때문에 FTA를 추진하는데 정치적인 반대가 적을 수 있지만,동시에 FTA의 효과도 미미하다. 보다 큰 효과를 낳을 수 있는 FTA를 원한다면,그것은 동종산업간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산업구조를 가진 국가간 FTA 추진이다. 왜냐하면 동종산업간 경쟁을 통해 잉여설비가 축소되고,퇴출된 인력과 자본은 더 효율성 높은 곳에 재배치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이상적인 FTA파트너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퇴출과 조정이 따라야 한다. 이 과정을 관리할 능력과 정치적 용기 없이 FTA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정치적 자멸행위다. 우려되는 대목은 한·일 FTA를 추진하는 한국측의 태도가 아전인수로 흐를 가능성이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한국만 일방적인 혜택을 누리고자 하는 방식으로 FTA가 추진된다면 일본이 동의할 리 만무하다. 한·일 FTA가 체결된다고 해서 한국이 안고 있는 대일통상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지도 않는다. 한국의 대일수출을 증가시키고,일본의 대한투자를 촉진시켜 만성적인 대일무역수지 역조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FTA를 추진한다면 장밋빛 환상만 부추기는 것이다. 대일무역수지 적자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며,한국의 대일부품 의존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동안 정부나 기업들이 이 문제를 방치해 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개선되는 조짐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문제해결에 대한 방법이 틀렸든지,아니면 잘못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온 것이다. 한국이 반드시 일본과 무역수지 균형을 이루어야만 하는 절박한 경제논리를 찾기 힘들며,일본의 부품산업 강세는 일본의 비교우위를 반영한 것일진데,그렇다면 문제의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평균관세율이 일본보다 더 높은 현실에 비추어 양국이 FTA를 체결한다면 당장은 일본의 대한수출이 한국의 대일수출보다 더 증대할 것이다. 관세인하로 인한 일본제품 수요 증대효과 이외에도 관세를 물고 수입되는 제3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무관세혜택을 받는 일본 제품에 대한 수입수요로 전환하는 효과까지 더하여 대일무역수지 적자가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는 형국이 발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FTA의 효과는 통합된 시장에서의 경쟁촉진,효율성 제고로 나타난다. 한국의 투자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정부에 의한 금융지배가 사라지지 않는 한,한국 내에서의 경쟁규칙이 예측 가능할 정도로 투명하게 집행되지 않는 한,그리고 아직도 반개방 정서에 영합하는 정치를 퇴출시키지 않는 한 일본이건 아니면 어떠한 국가와 FTA를 체결하더라도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폐해만 노출할 것이다. byc@ewha.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