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자 4명, 실종자 1명을 포함해 승조원 대부분인 24명의 사상자를 냈던 서해교전 당시의 처절했던 순간들이 드러났다. 이번 북 경비정의 선제사격은 전략적으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고의적인 도발이었으며, 전술적으로도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다. NLL을 넘어온 북 경비정 1척이 경고방송을 통해 돌아갈 것을 요구하며 차단기동을 하던 우리측 고속정 1개 편대, 2척에 선제사격을 한 것은 오전 10시25분께. 이날 북 경비정(SO-1급)은 우리 고속정 선도함(358호)이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지나가는 것은 그냥 놔두었다가, 뒤따라가던 고속정(357호)이 500야드 정도까지 가까워지자 장착돼 있던 85㎜, 70㎜, 14.3㎜ 포로 일제사격을 가했다. 선도함이 곧바로 대응사격에 나서지 못하도록 시간을 벌자는 계산이었다. 안기석 합참 작전차장은 30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뒷배를 쏜 것은 앞배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아주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북 경비정의 선제사격에 고속정 357호는 조타실, 기관실, 배 뒤편 등 3발을 맞았고, 정장인 윤영하 대위는 현장에서 전사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우리 고속정 해군사병들은 통신도 두절되고, 지휘관도 전사한 극한상황에서도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대응사격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우리 고속정 2척이 항상 전투준비가 된 상태였기에 그나마 즉각 대응사격이 가능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고속정 358호를 지휘하던 편대장이 배를 구하기 위해 갔을 때는 슈터에 장착된 실탄을 모두 쏘았음은 물론, 배안에 포탄이 단 한발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 안 합참 작전차장은 "마지막까지 한발도 남겨놓지 않고 다 쏘았다"며 "승조원들은 죽을 때까지 역할을 다했다"고 우리 해군용사들의 불굴의 정신을 평가했다. 더욱이 그 때는 피격된 고속정 357호가 서서히 가라앉는 상황이었다. 얼마 있어 우리 고속정 선도함과 인근 해역에서 다른 북 경비정을 막던 고속정2척, 그리고 추가투입된 고속정 2척과 초계함 2척의 반격이 시작됐다. 고속정 358호 편대장이 보니까 북 경비정으로 수백발이 날아가고 포를 돌리던 북 경비정 승조원들이 모두 다 나가 떨어지고 끝내는 화염에 휩싸였다고 한다. 우리 초계함에는 76㎜, 40㎜포에 사격통제 장치가 돼있어 명령만 이뤄지면 전과정을 컴퓨터로 처리하기 때문에 북 경비정에 명중이 되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북 경비정을 끝내 격침시키지 않은데는 전략적 고려가 있었다고 한다. 안 합참 작전차장은 "충분히 격침시킬 수 있었지만, 그 경우 북측이 유도탄이나해안포를 쏘고, 그리고 확전이 되면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어서 자제한 게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99년 서해교전때와는 달리 해군은 교전상황을 촬영하지 못했다. 99년 당시에는 며칠동안 서로간에 밀고 당기는 '몸 싸움'이 이어졌기 때문에 모든게 준비돼 있었으나, 이번에는 녹화준비가 되지 않은데다 불의의 공격을 당하면서촬영을 하지 못했다는 게 합참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교전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 27일과 28일 NLL을 침범했던 북 경비정들이 `위협기동'을 심하게 함으로써 `뭔가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져 합참 등 군 당국이 제대로 정보분석을 하지 못해 사태를키운 게 아니냐는 의문도 군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