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베이징(北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한 탈북자 처리문제를 놓고 한달간 계속된 한·중 외교마찰이 얼마전 탈북자들의 서울도착으로 일단락됐다. 탈북자 24명의 서울행을 계기로 탈북자 문제가 다시 우리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올들어 지금까지 한국땅을 밟은 탈북자 수는 모두 5백14명에 이른다. 최근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 수가 늘고 있는 것은 지난 90년대 후반 북한을 이탈해서 중국 등 제3국에 수년 동안 머물던 탈북자들이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의 도움으로 한국대사관 등 외국공관을 망명행로로 활용해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른바 '기획망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 수가 늘어나고,그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현실에서 우리 정부의 탈북자 대책이 미온적이라는 주장이 여러차례 지적돼 왔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탈북자들이 머물고 있는 국가들과의 외교적 마찰을 의식해 탈북자 문제에 있어 '조용한 외교'를 강조하면서 미온적으로 대처해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많은 탈북자 중에서 '선택받은 운 좋은 소수'만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고,대다수의 탈북자들은 굶주림,인신매매,강제노역 등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 북한의 특무(체포조)와 체류국 공안당국의 추적을 피해 고달픈 도피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탈북자 문제는 정치적 문제이기 전에 인도적인 문제다. 따라서 정부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탈북자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인도적 차원에서 입국을 희망하는 탈북자 전원을 수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강제 송환될 경우 수용소에 갇힐 수밖에 없는 탈북자들을 돕기 위해서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 국제기구와 관련국가들에 대한 외교를 강화,이들이 난민지위를 부여받도록 도움을 주고 탈북자 체류국에 '정착촌'이 건설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NGO의 잇따른 기획망명으로 탈북자 문제가 국제적 현안으로 부각되고,미국 의회에서도 지난 11일 하원에 이어 19일 상원이 만장일치로 탈북자들의 안전한 망명 허용과 북한으로의 강제송환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마크 스티븐 커크 하원의원은 "탈북자들에게 임시보호지위(temporary protect status)를 부여해 이들이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도 탈북자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론화를 계기로 '조용한 외교'에서 탈피,우리 공관으로 진입한 망명희망자 전원을 수용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운 좋은 소수의 탈북자 대책도 중요하지만,북한내에 있는 주민들에 대한 '구원'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도 북한인구의 3분의 1 가량인 8백70만명 이상이 식량난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2002년 한햇동안 북한에 61만t의 식량구호를 위해 2억5천만달러 가량의 대북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자들도 최근 평양을 방문한 유럽연합(EU) 대표단에게 경제난으로 탈북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식량난을 고려할 때 우선은 기아상태에 빠진 북한주민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도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서 적게는 매년 30만t에서 많게는 90만t 내외의 대북지원을 해오고 있다. 하물며 동족인 우리가 북한지도부의 책임과 불변을 탓하면서 대북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경우,기아에 신음하고 있는 북한주민들은 남쪽 동포들을 원망할 것이다. 북한 당국은 자구노력 없이 수년째 계속하는 지원 요청에 국제사회도 지쳐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 노력도 지난 5월7일 예정했던 남북경협추진위원회 2차 회의에 북측이 응하지 않음으로써 난관에 처해 있다. 북한 당국은 '명분'을 내세우면서 주민들을 굶주림에 방치할 것이 아니라,'실리'를 찾아 남북대화와 경협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