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서 드러난 세계 축구계의 가장 큰 동향은 '평준화'로 집약되고 있다. 일부 약체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절대 약자도 없고 절대 강자도 없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한 것. 아프리카팀의 실력이 유럽과 남미를 능가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축구도 세계 수준에 근접해가면서 세계 축구계는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로 들어갔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2위인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동반 탈락에서 보듯이 랭킹 20위내 팀간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수들 대다수 빅리그 출신=기량 평준화의 가장 큰 요인은 월드컵에 출전한 각국 대표팀 선수들 중 상당수가 세계 유수의 '빅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데 있다.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꺾으며 처녀출전팀으로 16강에 오른 세네갈은 출전 선수 23명 중 21명이 프랑스 1부리그 출신이다. 또 지난 12일 16강 진출을 확정한 파라과이도 13명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독일 등지에서 주전으로 활약중인 선수들로 짜여졌다. A조 1위 덴마크와 이탈리아를 꺾은 크로아티아도 대부분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등의 프로팀에 소속된 선수들이다. '죽음의 조'인 F조에서 1위를 한 스웨덴이나 D조의 미국팀 역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등의 외국 출신들로 구성됐다. ◆외국감독 영입=기량 평준화와 함께 눈에 띄는 부분은 전술이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미드필드에서 강한 압박 축구를 구사하는 것과 수비와 공격수 포진 등 어느 팀이나 대동소이하다. 이는 각 팀들이 외국 감독을 영입해 축구 선진화에 공을 들여온 결과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스웨덴 출신의 잉글랜드 감독인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을 꼽는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자존심을 꺾고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16강에 들었다. 그동안 약체로 평가되던 팀들은 모두 외국 감독 일색이다. 한국의 거스 히딩크는 네덜란드 출신이고 일본(필리프 트루시에)과 세네갈(브뤼노 메추)은 프랑스,카메룬(빈프리트 셰퍼)은 독일,중국(보라 밀루티노비치)은 유고 출신이다. ◆유명스타 의존 축구 몰락=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이라는 세계적인 스타의 부상으로 조별 리그에서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는 치욕을 당하며 탈락했다. 아르헨티나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라는 세계적인 선수가 있었지만 팀은 고작 두 골만 기록하며 떨어졌다. 유명 스타는 이름만으로도 상대팀에 위협이 될 수 있지만 그 선수가 부상당하거나 부진할 경우 팀은 치명타를 입곤 한다. 반면 파라과이나 세네갈 등은 유명한 선수가 없으면서도 똘똘 뭉친 조직력으로 16강 고지를 점령했다. 한국이나 일본도 스타 플레이어보다는 강한 조직력으로 강팀들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