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서 슬로베니아와 파라과이 조별리그 최종전이 파라과이의 3-1 승리로 끝나자 슬로베니아 벤치 윗쪽 관중석에서 한 중년의 사내가 회한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깡마른 체격에 37세의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잔주름이 깊게 팬 얼굴의 이 남자는 중남부 유럽의 소국 슬로베니아를 사상 첫 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슈레치코 카타네츠 감독. 카타네츠 감독은 '슬로베니아의 베켄바워', '슬로베니아 최고의 수출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스타 플레이어였고 지도자로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낸 영웅이었지만 이번 월드컵 본선은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1-3으로 허무하게 무너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실력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팀의 대들보인 즐라트코 자호비치가 자신을 비난한데 이어 남아공과의 경기에 앞서 귀국해버리면서 힘이 빠졌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남아공과의 경기에 나선 선수들은 자호비치의 이탈과 이에 따른 분란 탓인지 허둥대기만 하다 결국 0-1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순식간에 당한 2패로 16강 진출 희망은 사라졌음에도 카타네츠 감독은 월드컵본선 1승이라도 조국에 선물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관중석 지휘라는 걸림돌이 생겼다. 남아공과의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지나친 항의를 계속하다 퇴장당한 카타네츠 감독은 결국 마지막 경기는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날 카타네츠 감독은 선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관중석 이곳 저곳을 오가며 고함을 질러대는가 하면 손짓으로 작전을 직접 지시하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종종 벤치 가까이로 내려가 난간에 기댄 채 코치들과 선수 교체에 관해 상의를 하는 등 어느 경기보다 열심히 지휘했으나 결과는 또다시 1-3 패배였다. 더구나 이날 선수들은 마지막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각오로 가득찬 듯 활발한 공격을 펼쳐 전반 인저리 타임에 뽑은 선제골을 뽑았으나 그대로 무너져 카타네츠 감독의 아쉬움은 더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와 이탈리아 세리에A 삼프도리아에서 선수로 뛰면서 '우아한 수비수'라는 칭송을 들었고 국가대표감독으로서 외국진출에만 정신이 팔린 후배들을 다독거려 '기적'을 만들어낸 그였지만 월드컵 본선 마지막 경기는 '원없이 싸웠다'는 만족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기 직후 갖는 감독 인터뷰도 다닐로 포피도바 코치에게 맡긴 카타네츠 감독의 고국행 발걸음은 더없이 무거울 것 같다. (서귀포=연합뉴스)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