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한일월드컵축구 H조 예선 러시아-일본전이 열린 9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훌리건들의 난동이 발생, 시민 1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부상하는 유혈 사태가 빚어졌다. 또 일부 `스킨헤드'로 추정되는 난봉꾼들은 한국 교민을 포함한 외국인들에 분풀이 폭력을 행사했으며, 일부 극성 팬은 러시아가 패한 것에 실망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이날 크렘린궁(宮) 옆 마네쉬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본 1만5천여 시민 가운데 젊은층 200여 명이 러시아팀이 일본팀에 0-1로 패한 데 흥분한나머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주로 10대인 이들은 근처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폭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근처를 지나던 행인 1명이 흉기에 찔려 숨지고 200여 명이 부상했다. 희생자 신원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진압에 나선 경찰관 1명이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상태가 위중한것으로 알려져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일부 러시아 언론은 희생자 수가 3명에 이른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당국은 이들은 단순한 교통사고 피해자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훌리건들은 또 크렘린궁 근처 국가두마(하원)와 모스크바 호텔, 볼쇼이 극장 등주요 건물 앞에 주차된 차량에 불을 지르거나 마구 부쉈고, 근처 옷가게 등 상점 10여 곳의 유리창도 박살냈다. 경찰은 이들의 난동으로 최소 7대의 승용차가 불에 타고 20여 대가 크게 부서졌으며 국영 RTR 방송국 보도 차량 1대도 파손된 것으로 집계했다. 또 크렘린궁 옆 트베르스카야 거리내 일본 식당 `크라브 하우스(꽃게 집)'와 중국 식당 음식점 6곳도 피해를 입었으며 근처 차이코프스키 음대에서 열린 음악제에참가했던 일본 유학생 5명도 폭행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훌리건들은 이밖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출동한 경찰과 내무부 특수부대 `오몬'요원들과도 충돌, 경찰 10여 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난동에 가담한 60여명을 긴급 체포, 폭력 사태를 1시간여 만에진압했다. 경찰은 이들을 엄중 처벌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제2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방문 중 사건 발생 소식을 접한 보리스 그리즐료프 내무장관은 모스크바로 급거 귀환, 관련자 수사 등 사후 처리를 진두 지휘하고 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언론학부 근처 루뱐카 광장에서는 20대 남자가 러시아가 일본에 진 것에 실망해 자살을 기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폭력 사태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도 튀어 전철을 타고 가던 한국 교민이피해를 보기도 했다. 신원 밝히기를 거부한 한 교민은 `인터넷 교민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이날 오후 6시 10분께 칸코바 전철역에서 머리가 짧은 젊은이 8명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고 호소했다. 현지 언론은 경찰이 이날 훌리건들이 대부분 도망한 뒤 관련자 검거에 나서는등 늑장 대응을 해 피해를 키웠다고 비난하고 있다. 모스크바시 당국은 이날 월드컵 축구 경기 중계가 유혈 사태로 번지자 마네쉬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철거하고 앞으로는 스포츠 경기 중계를 하지 않기로결정했다. 모스크바에서는 매년 나치 히틀러를 추종하는 극우 폭력 단체인 `스킨헤드'에의한 외국인 폭력 피해가 빈발하고 있으며, 이날 폭력도 이들을 비롯한 10대들이 주도한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이봉준 특파원 joon@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