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승부의 세계는 황홀하다. 내가 그 느낌을 처음 받은 것은 '동물의 왕국' 사자와 사자의 대결에서였다. 수컷 두 마리는 온 힘을 다해 싸웠다. 살기가 번뜩이지만, 살기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그림은 청명했다. 거기엔 권모술수도 없고,동정도 없고, 계산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옛날에 잃어버린 원초적인 힘의 대결, 바로 깨끗한 승부의 세계였다. 아마도 그 세계는 도구를 만들고,기술을 발달시키고, 마침내 지혜라는 이름의 권모술수까지 동원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온 복잡한 문명의 세계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단순한 세계일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그 세계를 향한 원초적인 욕망이 바로 스포츠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왜 나는, 우리는 스포츠를 좋아하는가? 왜 지단이 나오는 경기는 언제나 관중들로 꽉 들어차고, 호나우두가 나오는 경기를 기대하는가? 왜 16강에 자신이 붙은 태극전사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가? 바로 단순한 원칙들로 원초적 힘을 재는 힘의 대결 때문이 아닐까? 이긴 자는 영광을, 진 자는 힘에의 경배를. 그 무구한 정신에의 향수, 내게는 그것이 스포츠의 매력이다. 드디어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개막됐다. 개인기가 뛰어난 최강의 프랑스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벌인 우리 팀에 행복한 기대를 걸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기분 좋게 들떠 있고, 기분 좋게 긴장되어 있다. 얼마 안 있으면 보게 될 최초의 우리 경기, 폴란드전이 벌어질 날이 기다려진다. 우리에게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상기한다. 그 당연한 사실이 왜 그렇게 새록새록한가. 응원해야 할 자랑스런 대표가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기분 좋은가. 나는 적어도 우리 경기가 있을 때만은 빠지지 않고 화면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먹은 맘 없이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월드컵을 치르는 분위기에 젖다보니 자연스레 14년전 서울올림픽이 기억난다. 88 서울올림픽은 지금의 월드컵 만큼이나 큰 축제였다. 언론은 지금처럼 연일 흥분했다. 정부는 세상엔 올림픽 밖에 없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올림픽을 홍보했고, 사람들을 동원했다. 그리고 올림픽은 무죄였다. 아니 제왕이었다. 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지지 않을까봐 모두들 조마조마했다. 모든 길은 올림픽으로 통해 있었다. 정치도 문화도 사회도, 그리고 그 중요한 경제마저도 올림픽으로 수렴되었다.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을 제대로 치르자고 모두들 조심했다.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수비와 골키퍼가 있는 골대에 골을 넣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패스하다가 공을 놓치기도 하고, 드리블을 하다 공을 빼앗기기도 한다. 상대수비의 태클에 걸려들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빼앗긴 골도 많고, 겨우겨우 값진 골을 얻어내기도 한다. 인생은 곳곳에 함정과 장애가 많은 경기임을 확인하면서 근근이 버텨온 세월, 그 세월 동안 우리는 단단해진 것 같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낀다. 무엇보다도 모든 길이 월드컵으로 통하지는 않는다. 월드컵에 환호하면서도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제 갈 길을 간다. 월드컵 기간 중에 열릴 6.13 지방선거에 대비해 득표운동은 여전히 치열하고,월드컵 기간 중에 '정쟁중단'을 선언한 정치권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각종 게이트가 연일 대서특필되고, 한편에서는 민주노총이 파업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이 제대로 치러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없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월드컵이 끝난 다음에도 지구는 돌아간다는 사실을. 그래서 월드컵에 마음껏 열광하면서도 휩쓸리지 않고, 충분히 즐기면서도 차분해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단선적이지 않음의 증거 아닌지. 단층적이지 않고 다층화.다원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의젓해진 우리가 기분이 좋다.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에서도 자신감으로 역동적이 된 우리가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하게 세계무대에 우뚝 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ja1405@cholli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