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문학은 자신이 속해 있던 모더니즘의 한 기류를 보여줬던 구인회의 도시적 특성과도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는 특유의 토속적이고 질퍽한 어휘,유머와 풍자적 수법 등으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사를 소설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살아나게 한다. 그가 거둔 이와 같은 문학적 성과는 구인회를 또 다른 각도에서 빛나게 한다. 어찌 보면 유정에게 소설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이미 형 유근이 그 많던 선대의 가산을 거의 다 날린 뒤여서 그에게 돌아올 몫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독립할 수 없는 비참한 처지,암울한 시대 상황,정신적 고립감,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쓰라린 기억,그리고 폐결핵 선고….소설 쓰기는 이 모든 시름과 고뇌,우울과 절망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몸짓이었다. 구인회 시절에 유정은 삶과 죽음에 걸쳐 각별한 관계를 맺게 되는 이상과 만났다. 두 사람은 집안 형편이 비슷하고 문학관도 웬만큼 통하는 사이였다. 특히 폐결핵을 같이 앓고 있어서 더욱 가까이 묶인다. "각혈이 여전하십니까?" "네,그저 그 날이 그 날 같습니다." "치질이 여전하십니까?" "네,그저 그 날이 그 날 같습니다."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 1936년 가을,이렇게 은밀하게 찬란한 정사(情死)를 모의하던 두 사람은 그 뒤로 1년도 채 지나기 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세상을 버렸다. 1936년 유정은 만성적인 늑막염과 치질,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정릉 언저리의 암자에서 휴양을 했다. 휴양중에도 글쓰기는 이어져 같은 해 '사해공론'에 '산골 나그네','여성'에 '옥토끼''슬픈 이야기','조광'에 '동백꽃''야앵'을 발표했다. 이듬해인 1937년 초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아 '조광'에 '따라지''정분','여성'에 '땡볕''총각과 맹꽁이' 등을 내놓지만,가난 때문에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해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암자에서 내려온 그는 병든 몸으로 다시 효제동 셋방과 매형의 집 등을 전전하며 창작을 하는 한편 돈이 될 만한 일거리에 매달렸다. 유정은 경기도 광주에서 과수원을 하는 다섯째 누이의 집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요양 생활을 할 참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 고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극소량의 아편을 썼으나 광주에 내려와서는 그것마저 끊었다. 형편이 아편을 살 수도 없었고,거기에 중독되면 헤어날 길이 없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 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두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오십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 주마.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병을 위하야 엎집어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 삼십 마리를 고와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살모사 구렁이를 십여뭇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쏙구리 돈을 잡아 먹는다. 돈,돈,슬픈 일이다.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해다우.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기다리마.삼월 십팔일.김유정으로부터.' 유정은 친구 안회남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 돈이 될 만한 탐정소설을 구해 보내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조카가 방으로 들고 온 세숫대야를 앞에 놓고 생각했다. 내 몸 속에 지금 고름이 꽉 차 있을 텐데 이깟 세수는 해서 무엇을 하나. 그래도 유정은 남은 생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유정은 안회남이 보내온 돈이 될 만한 탐정소설을 열심히 번역하는 수밖에 없었다. 밤을 새워가며 탐정소설 번역 일을 하는데 유정의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곤 했다. 닭 삼십 마리와 살모사 열 마리를 고아먹기 위해.그렇게 해서라도 병을 떨쳐내고 살기 위해. 한밤중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소리를 질러 조카를 불렀다. 누님을 오게 해 홍문을 보아달라고 했다. 누님이 치질이 악화된 홍문을 들여다보지만 통증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는 홍문을 면도칼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 때문에 한잠도 못 자고 비명을 지르며 밤을 새웠다. 1937년 3월 29일,새벽이 오고 있었다. 유정은 그날 새벽 6시30분께 길게 숨을 한번 몰아쉬고 눈을 크게 떴다. 세상을 마지막으로 잘 보겠다는 듯이.그리고 이내 영원히 눈을 감아버렸다. 스물아홉 나이였다. 김유정이 죽고 난 스무날 뒤 멀리 도쿄에 있던 이상이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 시인·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