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난방을 꺼야 한다" 지난 3월29일 열린 금융발전심의회의에서 한국은행의 어떤 간부가 한 말이다.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1으로 유례없이 두단계 상향시킨 직후 열린 회의여서 분위기가 고무돼 있는 상태였다.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국제경제 여건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고,국내 투자는 증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경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었다. 한국은 대만이나 싱가포르와 달리 GDP 규모 세계 13위라는 국내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내 소비진작에서 경제의 활력소를 찾았다. 외국의 이코노미스트들은 한국경제의 다양성을 장점으로 들고,국내 소비 확장을 통한 경제성장정책을 평가했다. 건설경기가 활성화하고,주가는 급등하고,기업의 경기전망도 낙관적으로 변했다. 진념 부총리겸 재경부 장관도 경제를 제 궤도에 올려 놓을 때까지 책임지고 정책수행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경제활성화를 갈구해 왔던 우리 국민들은 이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도리어 두려움을 느낀다. 한국 경제의 성장은 투자와 수출에 의해서 주도됐는데,소비증가에 의한 성장이 바람직한 것인지 자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주가 오름세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채권수익률보다 높아질 정도의 기업 이익증대에서 기인했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또 소비가 늘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경상수지가 흑자이니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서울 강남의 아파트가격 상승은 지난 2년 불경기로 인한 공급부족이 있긴 했으나 '투기'외엔 상승요인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은행의 수익창출을 위한 소비자금융의 폭발적인 공급은 가계를 빚더미에 올려놓고 있다. 가계부채의 증가는 폭발적으로,미국이 10년 걸린 속도를 한국은 2년 밖에 걸리지 않는 속도로 달리고 있다. 이 가계부채는 부유층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가계에서 더 빨리 늘어나고 있다. 일부에선 '가계대출의 10%만이 순수소비로 이용됐기 때문에 소비증가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20%는 주식투자에 이용됐다는 분석도 있다. 주가지수가 1,000 이상 계속 상승하면 다행이나,연말에 하락장세로 반전하면 원리금 상환이 어려울 수도 있다. 구조조정으로 금융회사의 이익규모가 늘어났지만,공적자금 투입 없이는 불가능했다. 조달비용이 들지 않는 자금이 금융회사에 1백조원 이상 들어갔으니 7조∼8조원 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공적자금의 대부분은 국민들의 세금이니 결국 국가 부채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 불과 2년이란 짧은 기간 국가신용등급을 BB에서 A로 끌어 올렸다. 효과적인 거시경제정책,구조조정 노력,외화보유고의 증가가 큰 몫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얘기하면 현재 A1 수준에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A3 수준으로 가기까지엔 아직 두단계나 남았다. 앞으로도 구조조정,노동시장의 유연성,규제완화정책을 계속해야 국가신용등급이 선진국수준으로 오를 것이다. 우리는 일시적일 수 있는 주가 상승,부동산경기 활성화,소비증가로 인한 경제성장에 도취해선 안된다. 자만에 빠지기에는 형편이 아직도 어렵다. 기업들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지 않고 있고,미국 경제는 기지개를 펴고 있지만 일본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어 수출 증가는 기대하기 힘들다. 여기에 정부정책의 딜레마가 있다. 부동산투기와 소비지출 증가 등 일부 분야의 과열징후에 제때 대응하기 위해선 통화정책을 안정으로 끌어가야 한다. 하지만 과도한 안정화정책은 자칫 기업투자가 늘어나기도 전에 경기를 죽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3∼4개월 밖에 되지 않은 경기활성화'가 구조적으로 정착됐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될 수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봄이 왔으니 난방을 꺼야 하겠지만,과연 우리 경제의 봄이 왔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대통령 선거 다음에는 반드시 인플레이션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새로 부임한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취임사에서 "성장 물가 국제수지 등 세가지 목표간의 균형을 위해 안정 쪽에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고무되는 발언이다. ydeuh@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