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패러다임이 IT(정보기술)에서 BT(바이오기술)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새로운 물질혁명으로 불리는 바이오기술 시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바이오기술은 21세기 경쟁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 바이오산업은 아직 초창기에 머물러 있다. 바이오분야의 연간투자규모는 선진국인 미국의 대형 생명공학기업 1개사에도 못미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생명공학분야 투자는 2억5천만달러. 미국 암젠사가 1년간 투자하는 8억5천만달러의 3분의 1에도 못미친다. 국내 바이오벤처는 지난해말 현재 6백여개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수익을 내는 벤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바이오기업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이들을 미래의 주역으로 키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경제신문사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공동으로 최근 한경 회의실에서 '한국바이오산업의 좌표와 방향'이라는 주제로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 참석자 *** 공석환 < 녹십자벤처투자 고문 > 김완주 < 씨트리 대표 > 서정선 < 마크로젠 대표 > 우종식 이원모 < 전경련 국제경영원 본부장 > 이종욱 < 유한양행 연구소장 > 한문희 < 한국바이오벤처협회장 > 한상기 < 바이오진 대표 > ( 가나다 順 ) 사회 : 김경식 < 과학바이오팀 팀장 > ----------------------------------------------------------------- △ 사회 : 바이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대표적인 바이오벤처기업인 마크로젠에서는 한국의 바이오산업을 어떻게 보십니까. △ 서정선 대표 :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인간게놈지도 완성과 더불어 촉발됐습니다.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해외에서 유전공학 연구붐이 일어났을 때 국내 연구진들이 적절하게 대응한 것이 큰 밑거름이 됐지요. 이를 계기로 우수 연구인력이 양성되었거든요. 현재 미국 보스턴 지역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하면서 언제라도 귀국해 바이오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인력이 4백여명에 달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들 인력이 지난 99년말부터 시작된 벤처붐을 타고 바이오 벤처를 창업했습니다. 마크로젠도 이런 환경속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바이오산업이 성장하려면 외국처럼 제약산업과 튼튼하게 연결돼야 합니다.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 성장한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마크로젠이 앞장서서 바이오와 제약간 연결고리를 강화하겠습니다. 바이오 벤처기업도 실적을 올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사회 : 국내 바이오산업의 일선에서 뛰면서 느낀 것들이 많을텐데…. 바이오 육성을 위해 어떤 것이 해결돼야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지요. △ 김완주 대표 : 국내 대표격인 마크로젠과 미국 셀레라를 비교해 보면 아직까지는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는게 사실입니다. 또 국내 제약업체는 미국업체에 비해 매출규모 연구개발비 등 기본적인 면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같은 상황을 돌파할 방법은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기업인수합병(M&A) 전략적제휴 등을 통해 힘을 모아 강력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또 정부 차원에서 국내 기업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구개발의 기초 인프라를 잘 갖춰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포항공대 광가속기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 셀레라 같은 회사도 자체적으로는 갖추기 어려운 시설입니다. 이러한 시설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한가지 방법입니다. △ 사회 : 제약회사쪽은 상황이 어떤가요. △ 이종욱 소장 : 바이오산업 가운데 제약산업이 시장규모나 기술의 활용면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새로운 바이오기술의 산물인 의약품을 언제부터 국내 제약업체들이 내놓을 수 있을지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제품화기술은 제약 기업들이 담당하고 기반기술의 연구개발은 바이오벤처 대학 출연연구소 등이 맡는 역할분담이 필요합니다. 또 광가속기나 NMR센터같은 고가의 기본 인프라는 정부가 구축해 주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국내 업체들이 너무 전문적인 분야에 집중하기 보다는 누구나 사용해야 되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보편적인 분야의 제품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 사회 : 대학내에도 바이오 벤처기업이 많이 설립되고 있습니다. 캠퍼스 창업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습니까. △ 한상기 대표 : 대학내에서 벤처를 창업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쉽게 확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많은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시설과 장비는 매우 열악한 실정입니다. 이같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대기업과 벤처가 경쟁이 아닌 공존의 상대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대학내 벤처로서는 대기업을 통해 각종 연구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리스크가 큰 첨단 연구과제나 기술에 쉽게 뛰어들 수 없는 대기업 입장에선 대학내 벤처를 통해 간접적으로 도전해 볼 수도 있지요. △ 사회 : 최근 벤처캐피털들이 바이오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바이오벤처업계를 평가하신다면. △ 공석환 고문 : 벤처기업에 필요한 것은 역시 자금입니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주는 기금은 사업화에 들어가지 않고 오직 기초연구에 투입됩니다. 나머지 부문을 벤처캐피털과 제약업체가 뒷받침하고 있지요. 처음엔 제약업체들이 바이오벤처를 우습게 봤지만 이제는 좋은 기업에 투자하려고 혈안이 돼 있습니다. 이는 벤처캐피털도 마찬가지죠. 반면 국내 제약업체는 신약을 제대로 개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벤처캐피털도 자금 규모가 작고 투자금의 회수기간이 너무길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이오벤처들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지원해줄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죠. 또 6백개 기업이라곤 하지만 투자할 만한 업체가 상당히 제한돼 있습니다. 돈이 바이오벤처들에 흘러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 사회 : 국내 바이오벤처들이 돈줄을 찾지못해 미국으로까지 진출을 모색하 고 있는데요. 선진시장에서는 한국의 바이오업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 우종식 사장 : 해외에서 봤을 때 국내 바이오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장이 없다는 것과 바이오 전문 경영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국제화시키고 연구인력을 현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오분야는 IT와 다르게 눈에 보이는 제품을 대량으로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지에서 연구개발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주정부가 오래전부터 바이오벤처 등을 대상으로 창업을 지원해 주는 SBIR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술개발과 사업화를 위해 이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사회 : 바이오업체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해외 로드쇼를 개최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텐데요. △ 한문희 회장 : 바이오벤처들의 애로사항은 자금부족과 마케팅 및 인력의 부족입니다. 먼저 마케팅과 관련 플랫폼기술을 개발한 바이오벤처들이 손을 잡을 대기업과 제약업체들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미국 현지 거점을 마련, 직접 해외 마케팅을 펼쳐야 합니다. 이들을 돕기 위한 미국 현지 바이오센터 프로젝트가 잘 추진되고 있습니다. 바이오벤처쪽에서도 고쳐야 할 점이 많습니다. 바이오벤처의 대부분이 코스닥등록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미국의 경우 약 80%가 인수합병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기업공개(IPO)를 통하는 것은 20%에 지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벤처의 기본은 플랫폼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큰 밑그림은 대기업이 그리고 이를 완성하기 위한 작은 퍼즐을 만드는 것은 벤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회 : 국내 바이오산업에도 장점은 있습니다. 잠재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 서 대표 : 현재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여러가지 면에서 준비가 부족합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수많은 바이오벤처들이 생겨나 해외에서 공부한 좋은 인력들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국내 벤처기업 몇군데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낸 우수 연구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분명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6백개의 바이오벤처 가운데 10%만이라도 뚜렷한 성과를 낸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성공은 국내 의약혁명이나 바이오산업 발전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3년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부에서도 재빠른 전략으로 바이오산업을 일으켜야 합니다. 정리=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