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한때는 TV가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해서 '바보상자'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도 TV는 무분별하게 방영되는 폭력 등을 문제 삼아 가정에서 추방해야 할 존재라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보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이 그렇다. 모든 것을 팽개치고 TV에 빠져 시간을 축내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에서 TV에 대한 반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 컬럼비아대 제르피 존슨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사이언스'최신호에서 TV의 폭력장면을 시청하는 시간이 길수록 폭력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14세 청소년이 하루 1시간 TV를 시청한 경우 16∼22세 때 폭력을 저지른 비율은 5.7%이나 3시간 이상이면 28.8%로 급증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남자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학협회 청소년정신의학아카데미 정신분석협회 등도 TV폭력장면과 실제 폭력행위간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아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모방학습일텐데,몇달전 세계적인 의학권위지인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이 보도한 흡연장면과 청소년의 흡연율에 관한 조사에서도 결론은 같았다. 흡연장면을 1백50개 이상 시청한 청소년은 50개 시청한 청소년보다 흡연율이 무려 7배나 높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은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채널권이 자녀들에게 독점되면서 부모들은 마음대로 TV를 시청할 수 없는 처지다. 이렇다 보니 부모들은 거실에서의 '채널권'확보를 위해 아이들 방에 TV를 따로 들여놓을 수밖에 없게 됐고,그들은 아무 통제없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는 게 보통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일수록 TV장면을 흉내내는 모방효과가 더욱 커진다는 것은 상식일 것이나,그렇다고 TV를 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이 갈수록 아쉽기만 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