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의 역사는 세계 근.현대사 그 자체라 할 정도로 인류 문명과 기술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2010 여수 세계박람회"도 2000년 독일 하노버,2005년 일본 나고야 박람회에 이어 21세기의 3번째 공인 종합박람회로서 그 규모와 경제적 효과면에서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엑스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산업박람회는 1569년 뉴렌베르그 시청의 박람회를 시작으로 신기술을 소개할 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1761년 런던 왕립미술 공업상업진흥회가 주최한 공업품전시회를 계기로 박람회가 근대적 틀을 갖췄고 1851년에는 "최초의 근대 엑스포"로 불리는 런던 대박람회가 열렸다. 이를 계기로 유럽 도시마다 박람회 개최붐이 일어났다. 근대적 의미의 세계박람회는 1851년 영국에서 개최된 런던 박람회를 시작으로 지난 2000년 독일 하노버 박람회까지 모두 1백5회 개최됐다. 한국에서도 지난 93년 대전 엑스포가 열려 세계박람회는 우리국민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편이다. 파리의 명물로 자리잡은 에펠탑도 1889년 파리 박람회를 기념해 세운 것이다. 세계박람회는 지역간 국가간 상업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상호이해 증진과 각국의 상품 관련 아이디어를 발표.평가하고 기술을 비교.전시할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자연스럽게 태동했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각종 박람회가 무분별하게 개최되면서 행사의 권위가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1928년 31개국 대표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국제박람회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는 한편 박람회사무국(BIE)을 설치하고 공인제를 도입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에 따라 1934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든 박람회는 BIE의 엄격한 심사를 통한 공인을 받아 열렸다. BIE는 5년 단위로 광범위한 대상을 포괄하는 종합박람회(등록박람회)와 그 중간에 치르는 특정 분야만의 전문박람회(인정박람회)로 구분하고 있는데 2010년 박람회는 종합박람회에 속한다. 대전 엑스포는 과학분야만을 다룬 전문박람회였다. 개최지 결정 등 박람회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BIE 회원국은 총 88개국으로 우리나라는 지난 1983년 가입했다. 런던박람회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이 최강의 국력을 뽐내기 위해 6개월간 개최,참가국 25개국,출품수 1만3천9백39점,입장자수 6백만명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 이 박람회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계문명을 선보인 자리였다. 이때 전시관이었던 유리건축물 "수정궁"(The Crystal Palace)은 구조적 안정성과 소음.진동에 대한 영향 등을 미리 실험하는 등 세계 건축사의 신기원을 이뤘다. 19세기 말까지의 박람회는 그야말로 역동적인 기술진보의 전시장이었다.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는 벨의 전화가 소개됐고 1889년(고종 26년)의 파리 만국박람회때는 강구조 역학의 상징인 에펠탑이 임시로 건설됐다. 에펠탑을 밤새 밝힌 것도 에디슨이 발명한 필라멘트 전구였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박람회를 통해 미국의 자동차 비행기가 실용화됐고 "통신혁명"을 예고할 무선통신기술도 처음 소개됐다. 에스컬레이터 에어콘 등도 엑스포의 산물이다. 2차세계대전 후인 58년 브뤼셀 박람회부터는 피폐화된 인간성 회복과 균형있는 사회발전에 조금씩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역대 박람회중 해양을 주제로 한 것은 54년 이탈리아 나폴리,75년 일본 오키나와,92년 스페인 세비아,92년 스위스 제노바,98년 포루투갈 리스본 엑스포가 있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