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26일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전격 수용, 내분이 수습될 지 주목된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5월 전당대회에서 총재제도를 폐지하고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면서 "나는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지 않음으로써 당의 단합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빠른 시일내 총재권한대행 체제를 갖춰 총재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5.10 전당대회' 때까지는 총재단 일괄 사퇴에 따른 당무 공백을 막기위해 한시적인 `당운영특별기구'를 가동하되 전대 이후에는 최고위원들이 당의 전면에 나서고 이 총재는 당무 2선으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최고위원단은 당무에 대해 실질적인 의결권을 갖는 합의기구로, 당을 관장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한나라당은 집단지도체제 도입에 따라 당무회의를 열어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한 뒤 내달초 중앙위 운영위를 소집, 이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 총재가 이처럼 비주류 요구를 전폭 수용한 것은 내분이 계속될 경우 일부 의원의 탈당과 함께 전열 와해로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총재가 당내 여론수렴과정에서 상당수 인사들이 특단의 조치 없이는 당을 추스를 수 없다고 건의했다는 후문이다. 일부는 집단지도체제 도입과 이 총재의총재경선 불출마 중 하나를 택일하도록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재주변의 핵심인사는 "이 총재가 지난 주말부터 집단지도체제를 유력하게 검토했으나 이에 반발하는 중진들을 설득하기 위해 발표 시기를 조금 늦췄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도 25일 마지막 총재단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마음을 비우고 국민이 원하는 바를 직시해야 한다"며 "나도 무엇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주류-비주류간, 중진-소장파간, 주류 내부간 극심한 알력과 갈등을 빚었던 내분 사태도 일단 진정 기미를 보이는 등 이 총재의 '승부수'가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당내 소장파 원내외위원장 모임인 미래연대의 김영춘(金榮春) 의원은 "미래연대주장에 화답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이 총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대선에 전념하겠다는 뜻이길 바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부영(李富榮) 의원은 "긍정적인 결단이나 만시지탄의 느낌"이라고 말했다. 탈당설이 나돌았던 김덕룡(金德龍) 홍사덕(洪思德) 의원도 당잔류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측은 "이 총재가 새로운 안을 던진 만큼 일단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집단지도체제 도입에 따라 최고위원을 겨냥한 당내 경쟁도 한층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트 이회창'을 노린 당권 선점의 의미가 가미되면서 입지 확보를 위해 중진의원들은 물론 일부 소장파 의원들도 앞다퉈 경선에 뛰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당내 표적이 돼온 `측근 3인방'의 거취는 유동적이다. 이 총재는 자진 불출마를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당권 확보라는 정치적 `운명'이 걸린 결정까지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당내 복잡한 역학구도상 집단지도체제가 단일한 대선전열을 구축하는 데 장애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구(舊) 민정계를 중심으로 한 중진들이 집단지도체제 도입에 극력 반대한 데도 이같은 명분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이 총재도 지난 97년 대선 당시 `후보 따로, 당대표 따로'의 폐단을 절감, 단일 지도체제를 포기하는데 적잖게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이번 결단이 이 총재의 대선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더 두고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욱기자 h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