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근무하는 한국 특파원들에게는 현지 투자가나 기업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는 나름대로의 지표가 몇가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한국의 고위관리들이 실시하는 한국경제설명회나 기업 IR의 분위기다.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면 자리가 텅텅 빈다. 와봐야 별 소득이 없는 탓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도 '설명회'가 열리면 현지 주재원들은 초청연사의 체면을 생각해 자리를 채우느라 애를 먹었을 정도다. 19일 낮 12시(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한 복판에 있는 인터컨티넨탈호텔 아스터볼룸.2백명 정도의 좌석이 준비됐지만 3백명이 넘게 몰렸다. 좌석을 잡지 못해 서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물론 GM 등 기업체 간부와 컬럼비아대 교수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한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주제로 열린 진념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였다. 인원수와 분위기만으로도 한국경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이 한눈에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진 부총리도 "4년 전 우리 정부대표들이 바로 이 호텔에 왔을 때는 우리 나라가 금융위기를 겪고 있어 당신들의 도움을 구하러 왔지만 오늘은 한국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좋은 뉴스'를 가지고 왔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IMF로부터 꾼 돈을 다 갚고,지금은 세계 5위 외환보유고를 갖게 됐다는 그의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 한국경제가 어려울 때 뉴욕을 찾은 인사들은 가능하면 연설을 길게 하고 질의응답은 짧게 했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설명하는데 자신이 없었던 탓이다. 진 부총리는 거꾸로였다. 기조연설을 짧게 마치고 질문을 받았다. 유창한 영어도 한몫 했지만 슬라이드를 이용하면서 설명한 한국경제의 회복 모습이 투자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앞으로 남북관계를 묻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의 질문에 "한반도를 잘 아는 당신이 북한을 방문해 개방을 설득해 달라"는 유머러스한 부탁으로 설명회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IMF위기를 극복해낸 '한국경제'에 보내는 박수였다. 강한 경제만이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 날이었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