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영합주의로 특징지어지는 포퓰리즘은 부활하는가. 남미대륙의 ''잃어버린 10년''이후 사라질 것으로 보였던 포퓰리즘이 90년대 들어 ''뉴포퓰리즘''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옛 정책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포장되어 살아난 것이다. 한번 포퓰리즘에 물들면 언제든지 다시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아르헨티나의 경험에서 알게 된다. 선거의 해인 올해 우리 주위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정부당국자들은 정책이 사회주의적 또는 포퓰리즘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포퓰리즘 정책이 결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경제체제는 남미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IMF위기''를 스스로 졸업하였다는 것이 차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남미국가들도 80년대에는 그 전에 시행되었던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IMF나 세계은행으로부터 우등생이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구조조정을 하였으며,민영화수준도 우리보다 더 앞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포퓰리즘과 사회주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잘 사는 소수보다는 잘 못사는 다수를 정책목표 대상으로 한 후 소득재분배를 통해 이 계층의 후생을 증진시키고자 하는데 종국적으로는 이들이 최대의 경제적 피해자가 되면서 체제가 붕괴되거나 정권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포퓰리즘은 한마디로 정치적 이념이지 경제적 논리는 아니다. 소득재분배,구조조정,경제성장을 추구하지만 실증적으로 이를 달성하는 경제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향상시키는 등 소득분배 개선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정책목표는 정치적 슬로건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을 실패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글로벌추세라고 할 수 있다. 개방경제에서는 국제경쟁력제고와 무관한 어떠한 정책도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세계경제통합이 진전되는 여건에서 개별 국가 특유의 정책은 효과를 나타낼 수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개혁,의료개혁,기초생활보장법은 포퓰리즘적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하향평준화란 개념,재정부실화를 수반하는 정책은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념해야할 점은 포퓰리즘적 정책은 한번 시행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득권 보호를 위해 저소득층 지원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포퓰리즘 정책에 제동을 걸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권력의 집중은 원하면서 법과 제도를 존중하지 않고,국민을 직접 상대하기 좋아하는 정치인들이 대체로 포퓰리즘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후진국적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 글로벌추세에서는 국내지향적인 포퓰리즘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각 경제주체들에 이해시켜야 한다. 선거의 해에 포퓰리즘 정책이 제시되는 것을 학계나 언론 등이 적극 감시하여 국민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둘째,국제규범을 개혁의 잣대로 삼도록 하는 것이다. 낡은 이념의 정치논리에 의한 정책결정의 소지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국익에 해를 끼치고자 일부러 포퓰리즘 정책을 취하는 정치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냉철한 이성을 갖지 못하고 글로벌추세에 대한 지적 이해가 부족하면서 뜨거운 열정에 바탕을 둔 정책결정을 하게 되면 이러한 전철을 밟는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셋째,자유무역협정체결에 적극 대응하는 등 경제개방을 가속화시켜야 한다. 내부지향적 정책결정은 보호주의,국수주의적 색채를 띠고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하게 마련이다. 글로벌추세가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층간 국가간 소득분배가 악화되고,금융자본자유화에 따라 각국 경제가 국제금융환경변화에 취약해지는 경향 등에 대한 대책은 강구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의 결함을 국내 포퓰리즘 정책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국민의 낮은 민도,정치체제의 후진성,글로벌체제의 취약성 등은 언제든지 선동적인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출현을 부르게 되어 있고,이러한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은 선거의 해인 올해 여론주도층에게 주어진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chskim@khu.ac.kr